지난 8월 어느 무덥던 여름날, 뉴욕타임즈의 경제에디터 아드리안 카터(Adrienne Carter)와 오찬을 했다. 재경관으로 부임한 지 거의 1년 만에 어렵게 성사된 면담이었다. 말로만 듣던 미국 저명 언론사의 고위 간부를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무슨 말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그녀가 최근 1년 동안 쓴 기사를 찾아보고, 그녀의 관심사, 키워드, 논조는 어떤지 탐색해 보기로 했다. 특이사항은 몇 안 되는 그녀의 최근 기사 중 두 개가 푸드, 특히 와인에 관한 기사였다는 점이었다.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 지방의 와이너리에 대해 맨해튼의 성공한 투자가들이 새 투자처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기사에서 그들의 본능적 투자욕구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더욱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그 멘도사의 와이너리 투자를 선도한 기업체가 바로 한인 건축가(Young Woo, 우영식)가 세운 부동산 개발회사 ‘영우 앤 어소시에이츠(YoungWoo & Associates)’였다는 점이었다.
지난 8월 뉴욕타임즈와의 면담이 있고 나서 10월 늦가을에 ‘영우 앤 어소시에이츠(YoungWoo & Associates, 이하 영우)’의 주요 관계자를 만났다. 나의 첫 질문은 회사의 경영철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대답은 내가 통상적으로 예견했던 건축회사로서의 그것이 아닌 애플이나 구글 같은 혁신기업의 답변 그 자체였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창의적인 디자인(Creative Design), 혁신적인 콘셉트(Innovative Concept), 그 어디에서도 안전한 공법, 실용적 설계 같은 건축 관련 풍취는 없었다. 이들은 많이 달랐다. 그리고 혁신적이었다.
자동차로 거실까지: 스카이 차고(Sky Garage)
‘영우’를 맨해튼 나아가 미국의 주요 혁신 건축사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지난 2008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카이 차고(sky garage)’를 갖춘 고급 콘도미니엄 사업이었다. 맨해튼은 면적이 60여㎢로 여의도(2.9㎢)의 약 20배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150만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고밀도지역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가 바로 주차다. 제아무리 억만장자 뉴요커라도 맨해튼에서는 지하주차장에서 발레파킹을 하고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자신의 아파트로 갈 수밖에 없다. 수백만달러의 고급 차량이라도 예외가 없다. 전원주택 생활자처럼 창 너머로 자신이 아끼는 고급 승용차를 감상하는 취미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 뉴욕 맨해튼이다.
‘영우’는 스카이 차고를 거실 옆에 설치한 최고급 아파트를 설계함으로써 그런 억만장자들의 로망을 실현시켰다. 개인별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들만의 아파트 거실 옆 차고로 직행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물론 이 아파트는 서민용 아파트가 아니다. 스카이 차고를 장착한 경우 최저가격이 300~400만달러를 호가한다.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급 아파트지만,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상식과 통념을 깨버린 주차장에 대한 관념이다. 억만장자들에게 가격과 비용은 어찌 보면 전혀 제약조건이 아닐 수 있는바,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파격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건축 후 날개 돋친 듯 판매됐고, 2014년 현재에도 고급 펜트하우스 시장에서 스카이 차고를 장착한 고급아파트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버려진 부두를 종합 리테일 상가로: 슈퍼 피어(Super Pier)
스카이 차고 사업 이후 현재 역점사업이 무엇인지 물었다. 건축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슈퍼 피어(Super Pier)’사업이란다. 현재 마무리 단계이며 2015년 초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슈퍼 피어 사업은 맨해튼 서쪽 강변 15번 스트리트와 11번 애비뉴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한 57번 부두(Pier)에서 이뤄지는 부동산 개발사업이다. 1952년 완공된 57번 피어는 그레이스라인사의 해운터미널 또는 MTA사의 버스종점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부터 사실상 버려진 시설물이나 다름없었다. 2004년 뉴욕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소요를 일으킨 사람들을 일시감금하기도 해 ‘허드슨강변의 관타나모 요새(Guantanamo on the Hudson)’라는 불명예스런 별칭도 갖고 있다. 총가용면적 27만스퀘어피트, 약 7,600평에 달하는 매우 커다란 허드슨 강변의 인공구조물이다.
이에 대한 ‘영우’의 개발 계획은 실로 놀랍고 혁신적이었다. 맨해튼 서쪽 부두에 세계에 유일무이한 리테일(retail) 상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첫째, 건축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버려진 460개의 해상운반용 컨테이너를 쌓아 일반 소매상들에게 상점이나 음식점으로 임대하겠다는 것이다(그림 2). 그리하여 전 세계 소매상 누구나 컨테이너당 저렴한 월임대료만 지급하면 자기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뉴욕 내 상가를 갖게 한다는 전략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울렛 스타일의 상가전략은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아마존 같은 온라인 마켓이 제공하지 못하는, 제품을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오프라인 소매상가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런 리테일 상가를 구상하게 됐다. 내년 초 오픈 예정으로, 이미 전 세계에서 충분한 양의 임대주문을 확보했다고 한다.
둘째, 피어의 구축물을 백분 활용해 총면적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평은 식당 및 음식상가로 구성할 예정이다. 그중 5분의 1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시안 푸드마켓으로 조성된다. 유일무이한 리테일 상가를 보기 위해 오는 다수의 관광객들에게 먹고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탁견도 드러내는 지점이다.
셋째, 부두에서 지하로 총 56개 계단을 내려가면 3개의 커다란 콘크리트로 만든 해저 구조물(caisson)이 등장하는데, 파도 철썩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이 구조물조차 활용할 계획이다. ‘영우’는 57번 부두를 사실상 버티고 있는 길이 100m, 폭 25m, 높이 10m의 이 해저구조물을 활용해 이곳에 목욕장(bathhouse), 등반용 절벽, 어린이용 플레이그라운드를 설치할 계획이다.
넷째, 부두의 외양은 그대로 보존하되 원래 건물에 있던 작은 데크나 천장은 개인용 비치클럽, 아웃도어 수영장을 가진 스파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혁신으로 만들어가는 세상
‘영우’가 만들어가는 건축물은 그들이 내세웠던 최초의(first), 창의적이면서도(creative), 세상을 놀라게 하는 혁신적인(innovative) 생각의 결실이었다. 필자는 특히 슈퍼 피어와 관련해 그와 같은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적용 가능할지 상상해 보았다. 언제까지 중국 관광객들이 명동이나 동대문상가, 시내 대형면세점에 만족할 것인가? 만약 대형유조선을 활용한 슈퍼 피어가 한강변에 만들어진다면, 혹은 국제공항 인근 인천항이나 부산항에 만들어진다면, 수많은 아시아 리테일업자들이 한국판 슈퍼 피어 내 컨테이너를 임대하려 들지는 않을까? 아울러 슈퍼 피어가 성공한다면 그 자체가 랜드마크가 돼 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이 꼭 보고 싶어 하는 ‘must see’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현실화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영우’가 꿈꿔온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은 분명 우리 속에 내재한 혁신 본능을 일깨우는 데 크게 일조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