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지구를 출발해 달 탐사를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비행사들이 사고를 당해 어려움을 겪지만 극적으로 지구로 돌아온다는 미국 영화 <아폴로 13>을 보면, 진 크랜즈 소장은 관제센터에서 영화 내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많은 직원들도 담배를 자연스레 피우면서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비단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금세기 초반까지 흡연은 낭만의 상징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약물로, 친교를 돕는 수단으로 애용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담배의 해악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이 속속 입증되고 있는 요즘, 이러한 모습을 찾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배는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친교활동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담배를 몰아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6차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 담배를 향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노력과 도전을 살펴본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은 보건 분야의 유일한 국제협약(FCTC 이외의 보건 분야 국제법규로는 감염병 차단 등 조치에 관한 국제보건규칙이 있음.)이자, 세계 179개 당사국이 가입하고 UN 출범 이후 가장 많은 국가들이 비준에 참여한 국제협약이다. 흡연은 전 세계 질병부담의 제1의 요인이자, 예방만이 이러한 질병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입증돼 왔다. 세계보건기구는 2000년대 초반, 담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담배 수요를 감소시켜 왔던 것에서 나아가 담배회사. 담배업계의 공급을 감소시키기 위한 공급규제를 포함해 수요와 공급에 관한 효과적 규제를 위한 국제적인 법규의 제정을 시도했다.
‘담배가격의 70% 이상 세금 & 높은 수준의 인상을 통한 담배 소비 줄이기’ 만장일치로 채택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는 1998년 5월 세계보건기구의 브룬트란트 사무총장 취임 이후 담배규제를 우선적 질병극복의 핵심과제로 선정하고 세계보건기구 사무국에 금연정책부서인 TFI(Tobacco Free Initiative)를 신설하는 조치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담배규제에 관한 국제적 공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두 차례 기술 실무위원회와 6차례의 정부 간 협상체(INB)를 거쳐 2003년 5월, 마침내 제56차 세계보건총회에서 만장일치로 FCTC가 채택되는 성과를 거뒀다. FCTC 채택 이후 1년 만에 발효 요건인 40개국 비준을 완료해 2005년 2월부터 국제법의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그로부터 지난 10년여의 기간 동안 FCTC는 담배로 인한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담배규제정책에서 전 세계 보건당국에 대해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2년 10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FCTC 당사국총회에서 FCTC 체제 아래에서 담배의 불법적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담배제품불법거래금지의정서(Protocol to Eliminate Illicit Trade of Tobacco Products)가 만장일치로 채택돼 FCTC는 단순한 담배규제를 넘어 불법거래 차단을 위한 국제법규의 탄생을 이뤄내는 또 하나의 전기를 맞고 있다.
FCTC 당사국총회는 첫 번째 총회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한 이래 2012년에는 우리나라 서울에서 제5차 당사국총회가 열렸고, 이번 제6차 당사국총회(2014년 10월 13일∼18일)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됐으며 우리나라의 문창진 교수(전 보건복지부 차관)가 총회 의장을 맡아 6일간 총회를 개최했다. 그간 보건 분야에서도 크고 작은 국제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해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2년 전 개최된 서울 당사국총회는 전 세계 140여개국의 1천여 국가 대표단들이 참석해 성황리에 회의를 마치는 성과를 거뒀다. 그 회의에서 선출된 우리나라 출신의 의장 주도로 이번 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우리나라 보건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이번 당사국총회는 담배규제협약 발효 이후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총회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총회의 중요한 성과들을 살펴보면, 우선 지난 2010년부터 논의된 담배가격 및 조세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장일치로 채택돼 보다 강력한 가격규제의 국제규범을 정비했다. 담배가격의 70% 이상을 세금으로 하고, 구매력보다 높은 수준의 인상을 통해 담배 소비를 대폭 줄이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또한 전자담배, 무연담배 등 새로운 형태의 담배 제품들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확인하고, 금연구역에서의 규제 등 신종담배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규제장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담배, 물담배 등에 조세를 부과하거나 금연구역에서의 사용을 단속하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신종담배의 건강 위해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금연보조제로 오인되고 있는 실정으로, 이 같은 신종담배 규제결의안 채택은 우리나라 담배규제정책 수립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OECD 국가에 비해 여전히 낮은 韓 담뱃값…보다 전향적인 담배규제정책 필요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와 과제가 있다. 우선 담배업계의 지속적인 방해 노력으로부터 담배규제정책을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의 숙제가 남아 있다. 지난 서울 총회에서도 일반인 참여자 중 담배업계 종사자가 있다는 사실이 포착돼 회의 2일째 일반 참여자의 총회 참여가 제한된 일이 있었다. 이번 총회에서도 전체회의 첫 의제가 일반인과 언론의 총회 참가자격 문제였고, 많은 당사국에서 일반 참여자를 담배업계와 연관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퇴장을 결정했다. 퇴장 직후 담배업계 관계자들이 회의장 입구에 모여 대책을 상의하는 모습이 NGO관계자들에게 포착돼 해당 사진이 모든 총회 참석자들과 공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인 참여 배제에도 불구하고 몇몇 나라에서는 정부 대표단을 통해 담배업계의 의견이 대변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일부 국가에서 담배산업을 아직까지도 국가 경제의 주요 부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이 같은 담배업계의 방해전략은 보건정책에 주요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전히 비당사국으로서 FCTC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미국·스위스 등이 조속히 협약에 가입해 무역·경제보다 담배규제 등의 보건정책이 우선함을 전 세계가 공유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법적·정치적·경제적 환경이 제각각인 나라들이 모여 서로가 처한 상황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합의를 이룬다는 것이 말처럼 평화롭고 논리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어떤 나라는 아직도 담배를 자국의 산업으로 보호하기 위해 담배규제를 완화하려 하고, 어떤 나라는 필사적으로 담배를 몰아내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다. 179개 당사국을 대표하는 의장국으로서 당사국 간의 여러 이견을 조율해 최종 결론에 무난히 이르게 하는 것은 단순히 회의를 주재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심지어 참을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이 자연스럽게 쟁점들을 합의에 이르게 유도하기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수고와 기교 그리고 경험이 요구되는 역할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총회 의장직의 성공적 수행은 우리나라 보건외교의 큰 획을 그은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나라가 의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담배규제에 있어 협약에 규정돼 있는 이행 의무사항인 경고그림을 아직도 도입하지 않고, 소매점 내에서 담배광고가 이뤄지는 등 비가격 규제의 협약 이행이 다른 담배규제 선진국에 비해 매우 뒤처져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총회였다. 또한 가격규제에서도 가격 인상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담뱃값이 매우 낮은 현실은 새삼 우리나라 담배규제정책의 후진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총회 의장직의 성공적 수행보다 중요한 것은 과감하고 실질적인 담배규제정책을 통해 보건외교에서 우리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본다.
담배의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가 이제 과거의 경제성장에 치중한 개발의 경험을 넘어, 인간의 삶과 행복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국가로 세계무대에서 자리매김하고 우리 국민의 행복과 세계인들의 건강을 추구하는 품격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선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보여줬던 리더십을 담배규제정책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경고그림, 담뱃값 인상, 담배광고 제한 등 담배규제정책 강화과정에서 담배산업계의 여러 가지 요란한 외침들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은 사실상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다. 모스크바 당사국총회장을 떠나면서 담배와의 소리 있는 전쟁에서 우리 정부와 국회의 분발과 미래지향적인 결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