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전반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몽골제국은 각지에 도시를 건설하고 교통망을 정비해 교역을 촉진시켰고 화폐 단위도 통일했다. 이것이 소위 세계화의 시초라는 주장이 있다. 현대의 세계화(globalization)란 국가 간에 존재하던 상품·서비스·자본·노동 등에 대한 인위적 장벽이 제거돼 세계가 일종의 거대한 단일시장으로 통합돼 나가는 추세를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정보화사회(information society)’ 혹은 ‘과학기술혁명(scientific technological revolution)의 시대’라 일컬어질 정도로 기술이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현대적 교통기술 및 정보통신기술(ICT)은 사람과 상품, 자본 및 아이디어를 물리적 거리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며, 직업군과 산업의 고용구조 및 작업장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세계임금보고서 2014/15」에 의하면 선진국을 중심으로 소득 불평등 경향이 심화되고 있으며, GDP 중 노동소득 비중이 자본소득에 비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분배구조 악화의 근원적 이유로 세계화 및 기술변화, 금융업의 발달을 지목하고 있다. 세계화 및 기술변화가 초래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특히 크다고 판단된다.
세계화는 크게 상품시장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로 나눠볼 수 있는데 상품시장의 세계화는 곧 경쟁의 세계화를 뜻하며, 이는 세계적 수준의 가격인하 경쟁을 의미한다. 세계적 가격인하 경쟁은 전문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추구함으로써 생산효율을 증대시키는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다수의 경제활동을 독립적으로 전문화해 수행하는 것보다 겸업하는 경우가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상품시장이 세계화되면서 게임의 룰이 규모 및 범위의 경제 달성 여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아웃소싱전략 사용
규모의 경제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반도체사업을 들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개당 제조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일찌감치 수십조원의 거액을 들여 최신식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그걸 통해 메모리 반도체 제조비용을 파격적으로 낮춰 일본과 독일 기업들을 제치고 가격 인하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상품시장이 세계화되면서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시스템(globlal production system) 또는 세계공급망(global supply chain)으로 일컬어지는 글로벌 아웃소싱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핵심사업만 남겨두고 제조 등 거의 모든 부분을 해외 저임금 국가로 아웃소싱해 전 세계에 공급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면 국내 고용 창출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수출호조 →고용확대 → 소득증대 → 소비증가의 선순환구조는 소멸된다.
범위의 경제는 최근의 기술진보, 융합에 따라 정보통신산업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컴퓨터 업체였던 애플이 iPhone과 iOS를 결합해 핸드폰 시장에 진입한 사례 및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해 스마트폰 OS(운영체제)를 제공하고 모토로라를 인수해 스마트폰 생산능력을 보유한 사례, 인터넷 소매업체 아마존이 책에서 시작해 대부분의 소매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사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력 제품인 윈도우즈 운영체계를 기반으로 익스플로러 끼워팔기(bundling)를 통해 웹브라우징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불과 수년 만에 선발업체인 네스케이프를 제치고 독점적 지위를 구축한 사례 등이 대표적으로 범위의 경제가 작용한 사례다.
현재 스마트폰 OS 시장을 구글과 애플이 양분하고 있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 및 범위의 경제는 후발주자에게 난공불락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승자독식구조가 형성돼 팔리는 상품만 잘 팔리게 되면서 몇 개의 소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고 신규 기업 진출이 어려워 산업 전체의 고용은 감소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은 고속성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고용과 기업체 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매년 영세화되면서 성장성, 수익성 및 생산성 모든 측면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기업과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이마트, 롯데마트 등의 대형 할인매장이 매장 수를 확대하면서 주변 골목상권 및 재래시장의 자영업 일자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로 인해 뒤늦게 출발하는 후발주자 및 규모가 작은 업체는 앞으로 나갈 길이 막히고, 승자독식구조는 청년실업 및 분배구조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돈이 돈을 버는 금융소득, 노동소득 비중 축소시키는 주요 원인
국가 간 자본이동으로 대표되는 금융의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 거시경제 리스크와 변동성 확대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부실이 레버리지(차입투자)와 증권화, 경매방식채권, 신용부도 스와프 등 첨단금융 기법과 파생상품을 통해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됐고, 다시 유럽의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지금 세계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기침체로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다. 차입비율이 높으면 주택가격이나 주식가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은 금융위기를 초래하며 실물경제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실업의 증가는 금융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이 더 크게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시장의 활성화가 실물경제의 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다우존스지수가 가파르게 올랐던 기간 동안 미국사회에서 무료급식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한 사례와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오히려 고용창출과 역행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주식시장 개방과 자유화에 의해 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이 늘어났고, 기업들이 그걸 막기 위해 단기 위주의 경영으로 이윤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자본집약적이며 고수익·고배당을 추구하는 금융산업의 발전은 기술집약적 산업의 발달, 기술변화, 단체교섭권 약화 등과 함께 GDP에서 노동소득 비중을 축소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소득은 그 자체가 ‘돈이 돈을 버는 소득’으로 상대적으로 투자의 여유가 있는 부유층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 금융 파생상품이 증가하고 있지만 일반 서민 투자자는 복잡한 금융기법이 동원되고 프로그램에 의한 기계적 매매가 주로 이뤄지는 파생상품에서 거의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2년 한 해 상위 1%가 배당소득의 70%, 이자소득의 44%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예금 등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금융소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될 때 금융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득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소득 불평등은 민간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의 원인이 된다. 1년에 몇십억, 몇백억을 버는 고소득자가 소득에 비례해서 양복을 몇백벌 구매하고 하루 10끼 이상 외식을 하고 한 달에 몇십번씩 이발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 소득이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고소득자의 소득은 소비진작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
금융산업의 규모가 과도하게 커질 경우 비대해진 금융 부문으로 인해 재정정책의 효과가 상쇄된다. 특히 국가 간 자본 이동성 증가로 인한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의 어려움, 조세 피난 등으로 재정정책의 소득재분배 효과에 구조적인 제약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위기로 인해 재정수요가 많아진 국가가 다급한 나머지 소득원이 확실한 근로소득세와 사회계층적으로 무차별 효과가 나타나는 간접세를 통해 재정을 꾸린다면 재정정책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양날의 검이 된 ICT 발달, 생산 크게 늘어나도 고용은 없어
20세기 말부터 세계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고용 없는 성장에 직면해 있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공장자동화, ICT산업에 대한 의존 확대 등 기술변화가 고용 없는 성장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제가 성장하면 이에 비례해 일자리도 늘어나야 하는데, 반도체·휴대폰·LCD와 같은 ICT산업은 기술·자본집약적인 산업의 특성상 생산이 크게 늘어나도 고용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
ICT의 발달로 아이디어만 좋으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시장에 순식간에 확산돼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하루아침에 거대기업 또는 거대부자가 탄생할 수 있다. 반면,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GM이나 현대중공업 같은 전통적 제조업체만큼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우버택시’같이 서민 일자리를 빠르게 잠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술변화는 노동생산성 증가와 실질임금 증가 간 분리현상의 주요한 원인으로, 결과적으로 GDP에서 노동소득 비중을 축소시키며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기술변화로 인해 컴퓨터로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이 있는 사람과 자본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소득을 누리지만 기술이 없는 평범한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선진국의 미숙련 제조업 일자리와 정보통신기술에 취약한 고령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기술변화로 가장 많이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