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24개의 공식 언어와 7억명이 넘는 인구를 지닌 거대한 공동체조직이다. EU의 통합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평화라는 중요한 성과를 가져왔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를 통한 경쟁과 경제성장, 하나의 거대한 단일시장 건설을 위해 EU는 지속적으로 지식재산권제도를 통합하고 통일화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U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이다. 1951년 6개국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출발한 EU는 1993년 발족돼 단일 화폐를 도입하는 등 역내 시장통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 분야에서도 절차와 효력에서 통합된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다. EU는 일찍이 상표와 디자인 분야에서는 공동체상표(CTM; Community Trade Mark)제도와 공동체디자인(RCD; Re-gistered Community Design)제도를 도입해 상표 분야 제도통합을 한 바 있다.
특허의 경우도 1970년대 이후 특허제도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1978년 유럽특허청(EPO; European Patent Office)이 탄생하게 된다. 유럽특허조약(European Patent Convention)으로 탄생한 EPO는 출원단계와 심사단계를 통합했다. 그러나 상표와 달리 유럽특허는 출원단계와 심사단계까지의 통합이며 정작 특허권자가 특허권을 행사하게 되는 등록과 특허분쟁에서는 여전히 개별 국가에서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등 제도의 통합이 이뤄지지 못했다.
저작권의 경우는 2001년에 마련된 EU 저작권지침이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 부합하지 않아 EU 저작권법을 간소화하고 현대화하는 작업이 현재 EU 집행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장 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지재권 분야의 통합은 활기를 띠고 있다. 단일특허제도가 2016년 시행될 예정이고 상표법 지침과 규정도 최근 개정됐다. 저작권 개혁 작업도 5월 6일 디지털 싱글마켓 전략을 발표하면서 올해까지 개혁안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U의 통합작업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40여년간 회원국들의 노력과 인내를 통해 만들어진 배경을 갖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지재권 분야의 통합도 인내와 타협의 결과물이다.
40년 만의 단일특허제도 도입엔 성공…불참국ㆍ수수료 문제 남아
흔히들 특허는 혁신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특허 1건을 획득하기 위해 무려 2만유로에 가까운 비용이 들고 미국 등 경쟁국에 비해 10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든다면 특허는 혁신의 촉진제가 아니라 걸림돌이 될 것이다. EU는 경제와 산업경쟁력을 저해하는 특허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2009년 그리스 재정위기에서 출발한 유로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노베이션을 촉진하기 위해 2012년 전격적으로 EU 단일특허제도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1970년대 이후 특허제도의 통합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이견노출로 합의를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통일된 특허제도를 갖게 된 것이다.
단일특허(Unitary Patent)는 단일효력을 갖는 유럽특허(European Patent With Unitary Effect)의 약칭이며 25개 참여 회원국에서 단일한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 유럽특허는 출원 및 심사단계까지만 통합된 제도이며 정작 특허권을 행사하기 위한 권리의 등록 및 분쟁은 여전히 각 회원국별로 진행돼야 했다. 기존의 유럽특허를 이용할 경우 특허권의 유·무효, 특허권의 보호범위, 침해 여부 판단은 개별 회원국 법원이 판단하게 되므로 유럽 전체 국가에 대해 특허권을 통합적으로 행사하기 어렵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공동체에 모두 적용되는 지역특허(regional patent)로 단일특허제도를 도입하게 됐다.
단일특허제도 도입으로 40여년간 지속된 유럽특허제도의 통합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먼저 단일특허의 공식언어(영어·프랑스어·독어)에서 제외된 것에 반발해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단일특허제도에 불참하고 있다.
또한 단일특허제도가 초기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수료 수준이 설정돼야 한다. 기존 유럽특허를 이용할 때보다 비용 면에서 우위가 있어야 중소기업이나 이용자들이 단일특허제도를 이용할 것이다.
지난 3월 23일, 유럽특허청(EPO) 내 선정위원회는 그동안 논의됐던 단일특허제도의 특허유지 수수료에 대해 두 가지 안(TOP4, TOP5)을 제안했다. 그동안 특허유지 수수료는 단일특허제도 도입에서 가장 민감하고 관심이 많은 이슈였는데, 당초 예상한 대로 기존 유럽특허에서 4~5개 회원국에서 특허를 획득할 때 소요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2016년 시행 예정인 단일특허제도와 통합특허법원의 도입으로 특허 분야에서 하나의 유럽이 될 전망이다.
특허와 달리 상표의 경우 일찍이 통합된 제도로 운영돼 왔다. 1989년엔 상표지침(Directive)을, 1994년엔 공동체 상표규정(Community Trade Regulation)을 제정해 EU 공동체 상표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상표제도는 이미 15년 전에 도입돼 그간의 기업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지난 4월 21일 EU 집행위, EU 의회, EU 이사회의 소위 3자 논의를 통해 상표법 개혁안에 합의함으로써 상표제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게 됐다. 이번 상표법 개혁은 출원기간 및 요구사항 등을 통일시켜 비용과 절차 면에서 효율성을 높여 경제성장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기존 유럽상표청(OHIM; Office for Harmonization in the Internal Market)을 유럽연합지재권청(European Union Intellectual Property Office)으로 변경하고 EU 전역에 상표권의 효력을 가진 공동체 상표의 명칭을 유럽연합상표(EUTM; European Union Trade Mark)로 변경했다.
또한 상표수수료 체계도 보다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게 개선했다. 기존에는 출원과 갱신등록 시 기본 3개 류(class)를 의무적으로 지정했지만, 앞으로는 1류 1수수료 체계로 변경해 불필요한 상품류를 지정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 절감이 많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0년을 초과해 EU 상표공동체 상표를 이용하는 기업의 경우 최고 37%까지 비용이 감소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상표법 개혁으로 EU 전체적으로 상표제도의 조화와 통일화로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작권 현대화 등 16개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 추진
저작권 분야는 EU가 세계에서 큰 영향을 행사하는 분야 중 하나다. 유럽특허청(EPO)과 유럽상표청(OHIM)의 보고서에 따르면 저작권 집약산업은 EU 전체 고용에서 약 3.2%를 담당하고 있으며 전체 EU GDP에서 4.2%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2001년 EU 저작권 지침이 제정될 당시와 비교할 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환경변화가 있어 기존의 저작권 지침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음악이나 비디오 시장의 경우 저작권문제로 국경 간 장벽이 문제가 되고 있다. EU 집행위 발표에 의하면 온라인으로 디지털 기술을 개인에게 판매하고자 하는 기업의 45%는 저작권 문제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EU에서 주문형 비디오콘텐츠 시장의 4% 미만이 국경제한 없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지역별로 구별되는 저작권 규정으로 EU 시장에서 온라인 콘텐츠의 유통에 제약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디지털 단일시장(Digital Single Market)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기술은 국경이 없음을 역설하고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저작권지침의 현대화 작업은 지난 5월 6일 EU 집행위가 발표한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의 16개 주요 정책 중 하나다.
EU의 저작권지침 개정안에 대한 회원국 간 다양한 입장 차이가 존재해 통일된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지만 EU 집행위는 올해 말까지 저작권 개혁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EU는 오랜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학문적 자산과 경제적 번영, 산업적 기반으로 많은 지식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즉 유럽이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 지식재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럽 경제성장의 기폭제로 삼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재권제도의 통합과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다수의 국가로 구성돼 있는 EU의 경우 각 회원국 간의 지재권제도의 통합이 단일국가와 비교할 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국가보다 더 많은 시간과 협의가 필요하다.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통합을 위한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EU 지재권 분야의 통합의 끝은 어디인지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