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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상·뇌졸중 일으키는 납, 생활 속 페인트를 의심하라!
고금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 2020년 01월호


주유소 앞에 적혀 있는 ‘무연’ 휘발유의 뜻을 알고 있는 분? 나는 막연히 연기가 안 나는, 없을 ‘무(無)’ 연기 ‘연(煙)’의 그 ‘무연’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왠지 공기 오염이 덜한 친환경 휘발유라는 예감적 예감이 들었는데…. 그건 맞고 연기가 안 난다는 대답은 틀렸다.
‘무연’ 휘발유는 연료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납이 들어 있지 않은 휘발유를 뜻한다. 납은 휘발유가 잘 타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자동차 배기가스를 타고 공기 중으로 퍼지면 그 흔적이 고스란히 지구와 우리 몸에 남는다. 그럼에도 휘발유에서 납을 금지시키는 일은 에너지 회사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혔다.
이를 구제해낸 것이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뽑아낸 영구치에서 납이 많이 검출될수록 어린이의 지능도 덩달아 낮아졌던 것이다. 납은 지능발달을 저해하고 행동이상을 일으키는 중금속으로, 어릴 때 노출되면 더욱 영향이 크다. 게다가 휘발유에 납을 첨가한 후부터 바다의 대륙붕에 납이 급격히 쌓인다는 증거가 나왔다. 배기가스를 통해 공기에 퍼진 납이 낙하하는 눈송이처럼 사뿐히 땅과 바다에 내려앉은 것. 결국 이를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함으로써 휘발유에서 납을 금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얼마 전 텀블러에서 납이 검출됐는데 이는 텀블러 몸체를 칠한 컬러 페인트에 납이 들어 있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페인트를 칠한 우리 집 벽은? 우리 아이의 빨간색 목재 장난감은? 어린이집 노란 봉고차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는? 둘러보니 다채로운 색을 가진 세상천지가 페인트를 입고 있었다.
궁금한 나머지 지난 6월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5개 브랜드 총 41개의 유성 페인트를 조사해봤다. 그 결과 약 20%의 제품에 납이 들어 있었고, 일부 제품에서는 1만ppm이 넘는 고농도의 납이 검출됐다. 그런데 어떤 제품도 이에 대한 정보가 라벨에 적혀 있지 않았다. 현재 일부 어린이 제품과 어린이 공간을 빼면 페인트의 납 함유에 대한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이미 20여년 전에 납을 금지당한 휘발유가 들으면 “왜 나만? 이건 역차별이야”라고 고소할 상황 아닌가. 납은 산모를 통해 태아에게 전달돼 발달을 방해하고 성인의 뇌졸중과 허혈성 심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만 납 노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 6,999억달러로, GDP의 약 1.8%를 차지한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환경계획(UNEP)은 각국 정부에 페인트 속 납 기준을 90ppm으로 낮추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유럽과 북미 국가는 물론 최근 필리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인도 등은 페인트의 납 함유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페인트의 납 함유 기준이 없는 전 세계 30%에 속하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국내 페인트 회사들은 이미 그 기준을 충족하고도 질 높은 페인트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도대체 왜 규제를 안 만드는 걸까. 필리핀 어린이들보다 한국 어린이들이 납에 강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납이 든 페인트 제품은 ‘leadpaint.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이트를 통해 규제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아이가 사용하는 알록달록한 목재 혹은 철재 제품이 의심스럽거나 오래전에 페인트를 칠한 곳에서 생활한다면, 아마존에서 즉석 납 테스트기를 구입해 측정해보자. 어린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과학자 흉내까지 내야 한다니, 한시바삐 규제가 마련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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