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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서재에서 가장 아름답게 낯선 책
김혼비 에세이스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다정소감』 저자 2022년 11월호


이번에 소개할 『야생 숲의 노트』는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품에 가깝다. 적어도 ‘이것’을 구입할 때의 내 마음은 그랬다. 물론 책이라는 사물 자체가 이미 ‘종합예술품’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표지를 포함해서 책 디자인에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는 편집자들의 마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그렇겠지만) 여기서는 이 책의 남다른 특색을 구별하기 위해 ‘예술품’의 정의를 부러 협소하게 가져가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일단 이 책은, 음악 교본과 악보집, 음악에 관한 여러 인문학 서적들을 출간해서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출판사인 ‘프란츠’에서 만든 다른 책들처럼 정말 아름답다. 손에 거칠면서도 기분 좋게 감기는 천을 씌운 표지의 감촉, 제목 없이 초록색 새 한 마리만이 연한 베이지 빛 천 위에 수놓아진 듯 새겨진 앞표지, 원서에는 없지만 편집과정에서 책에 소개된 40여 종의 새 그림들을 옛 자료에서 찾아 세밀화로 그려 넣은 컬러도판…. 

하지만 이 책을 예술품으로 느끼고 꼭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던 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더해 이 책이 담고 있는 신비롭고 실험적인 작업 때문이었다. 이 책은 19세기 사제이자 음악가인 시미언 피즈 체니가 30년 넘게 숲에서 여름을 나면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악보로 기보한 세계 최초의 새소리 악보집이다. 1982년 발간된 책으로 새소리가 음표로 직역된 악보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한 음 한 음 머릿속에 떠올리는 동안 내 영혼이 숲의 형태를 띤 영적인 세계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듣는 경험.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놀랍게도 그가 악보로 옮긴 건 새의 노랫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체니에게 자연은 경이로 가득한 우주적인 악기와 같은 것이었고, 그는 새의 노랫소리뿐 아니라 양동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발등을 스치는 여름 잔디, 경첩에 매달려 게으르게 흔들리는 문, 겨울밤의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옷걸이들에서도 음악을 발견해서 악보로 옮겼고, 감사하게도 일부가 서문에 실려 있다.
“자연에는 음악이 없다”라고! 쥐도, 두꺼비도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개구리들은 ‘수면 위에 음악’을 만든다. 우리 발등을 스치는 여름 잔디도 작은 음악가들로 가득하다. (......) 무생물들마저 자기만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 물이 어느 정도 채워진 양동이 위로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자. 
   -p.17


그가 쓴 글들은 또 어떤가. 어떤 대상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위트 넘치는 표현과 포착들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그가 쌀먹이새에 대해서 “그는 최고의 노래를 들려줄 때조차 “정말이지, 오늘 노래가 잘될지 걱정스러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늘 조심스럽고 머뭇대는 음으로 시작하는데, 물이 내려가는 듯한 그 소리조차 음악적이다”라고 묘사하고, 암탉에 대해서 “피아니시모 연습과 숨을 참는 것의 예술을 보여준 범례”라고 쓰면서 암탉 소리를 아주 간단한 악보로 기보해 놓은 것을 보면 잔잔하게 웃음이 터진다. 이 책에 큰 영감을 받아 체니를 주인공으로 한 희곡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쓴 파스칼 키냐르는 소설 『눈물들』에서 말했다. “영혼이 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영혼은 다른 세계로 옮겨진다”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문장의 의미를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언젠가 친구의 작업실에서 피아노 건반을 조심스레 눌러가며 서투르게나마 새소리를 연주했던 순간의 황홀한 행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