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마다 연말특집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만화책을 두 권씩 소개하곤 했기에 올해도 밤공기에서 가을이 느껴지면서부터 설레는 기분으로 이런저런 책들을 꼽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11월을 몸과 마음이 바닥에 질질 끌리듯 조금 힘겹고 무겁게 통과하면서 올해는 어디선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를 분들을 위해 슬픔, 그중에서도 특히 죽음으로 비롯된 슬픔에 관한 책 두 권을 준비하게 됐다.
살다 보면 유독 가깝게 느껴지는 죽음이 있다. 그것은 실제로 가까운 관계를 맺은 누군가의 죽음이기도 하고 이름도 얼굴도 거의 모르는 타인의 죽음이기도 하다. 그런 죽음 앞에서는, 상갓집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기 쉽지 않다. 가늠 없이 울다가, 계속되는 불면에 수면제나 안정제를 입에 털어 넣다가,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든 것을 애써 피하다가 문득 어리둥절해진다. 이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때로는 이보다는 더 고통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날에는 죽음에 휘둘려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나약하게 느껴졌다가 어떤 날에는 변함없이 일상을 꾸려나가는 내가 잔인하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온전히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이고 그래야 한다고 학습된 슬픔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죽음을 경계로 ‘전과 후’라는 새김눈이 새겨져 시간 개념이 달라지고(이를테면 2022년 10월 29일 이전과 이후) 세상에 대한 믿음의 토대가 흔들리며(적어도 이 장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당연히 안전할 거라는) 원래 알아왔던 세계는 사라진다. 신뢰는 깨어지고 심장은 뜯어진다. 이런 혼돈 속에서 작가 C.S. 루이스의 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에 매달려 이 책들을 다시 읽으며 수많은 이들이 애도의 강을 건너고 슬픔의 숲을 지나온 궤적을 좇았다. 궤적의 어느 지점에 있든 우리가 연결돼 서로의 고통을 최대한 인식할 때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서.
각각 배우자와 형제를 잃은 깊은 슬픔 속에서 오랜 시간 애도를 직접 경험하고 연구해 온 두 전문가가 10여 년간 만난 유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는 애도하는 이들이 맞닥뜨릴 모든 문제를 다루는, 정말 섬세하고 실용적인 안내서다. 책에 실린 ‘애도 중인 사람을 돕는 이들을 위한 지침’ 같은 것도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짧게나마 ‘애도와 꿈’에 대해서까지 다룬 것을 보며 펑펑 울었다.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고인이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어떤 삶의 순간들을.
저는 ‘애도로부터 벗어났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애도로 향하는 입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애도가 대답에 관한 것이 아님을, 질문을 가진 채로 살아가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p.407
『슬픔의 위안』은 보다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슬픔을 겪은 많은 이들의 인터뷰, 실제 사건, 여러 문학작품 속에 담긴 슬픔의 조각들을 모아 놀라운 솜씨로 엮어낸 산문집이다. 빛나는 통찰이 시적이고 위트 있는 표현에 담겨 있다. 책에서 인용한 W.H. 오든의 시구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올해 세상을 떠난 많은 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모든 별이 사라지거나 진다면 / 나는 배워야 하리, 텅 빈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