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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문제를 따지면 화난 사람인가요?
오찬호 『민낯들-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2022년 12월호
 
시골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면 그 안에는 강한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구심적 역할을 또렷하게 하는 독립서점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무관심을 전제로 운영되는 도시와는 다르게 강연 전부터 시끌벅적했다. 교류의 크기는 작겠지만 서로의 끈끈함은 대단했다. 청중 중에는 작가 초청 강연을 ‘누가’하는지, ‘어떤 내용’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저 친한 사람 모이는 동네 행사 정도로 여기고 온 이들도 있어 보였다. 이건 장점이지만 또 단점이기도 하다. 장점은 이 서점 덕택에 자신이 몰랐던 영역을 접할 기회가 자연스레 생겼으니 친교의 가치가 배가된다는 것이고, 단점은 강연의 맥락을 모를 때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긴장감이 사라져 버린다는 거다.

작가를, 작가의 책을 전혀 모르는데 어쩌다가 강연을 듣는 순간이 괴로울 수 있는데 가치관도 충돌한다면 곤욕일 거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 욕도 ‘속으로’ 하면서 강연을 듣고 있는 다른 사람과 행사를 기획한 관계자들을 배려한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더라도 생산적인 토론을 위한 문제제기라는 점을 밝히며 질의응답의 물줄기를 꺾지 않으려는 추임새를 넣는다. 강연하는 사람은 성심성의껏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집단의 결속이 지나치게 강하면 단체의 힘에 슬쩍 말을 실어버리는 경우가 등장한다. 환호든 질타든 지나치게 큰 목소리는, 원래 그 사람의 목소리가 커서가 아니다. 그 공간에서만 그럴 수 있는 우주의 기운이 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하던 대로 사회를 비판했다. 『민낯들』이라는 내 책을 소개하며, 한국의 민낯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전달했다. 모든 차별과 혐오라는 열매는 그것에 동조하는 ‘우리들’이란 씨앗으로부터 출발함을 잊지 말자면서 마무리했다. 그리고 질의응답. 제일 먼저 손을 든 그 사람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찬호 씨는 뭐랄까, 굉장히 파이팅이 넘치네요. 혹시 화났어요?”
천 번 넘게 강연하면서 별 희한한 경우를 다 겪었지만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정도를 넘어가며 펼치는 경우야 종종 있지만, 그건 고정관념을 깨는 작가로서 감당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강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질문도 없었다. 오직 ‘나라는 사람에 대한 한 줄 평가’만이 등장했을 뿐이다.

나는 이 빈정거림의 연료를 잘 안다. 개인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서사가 감동을 쉽게 자아내는 만큼 그 반대편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감동 서사의 빈도는 많고 강도는 강하다. 그래서 그 반대를 폄하하는 정도도 선을 쉽게 넘는다. 자기가 대단한 줄 아나 봐, 왜 가르치려고 하는 거지 등의 말이 별다른 논거도 없이 툭툭 던져지는 이유다. ‘진지충’은 어떠한가? 진지했다고 벌레가 되는 놀라운 세상이다. 모든 진지함에 적용되면 공정하기라도 할 거다. 농담이라면서 던져지는 혐오 표현을 지적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상 속 차별의 현실을 짚어낼 때만 그러하다. 부동산으로 부자 되는 법, 주식으로 경제적 자유인이 되는 법 등은 아무리 장황한 설교라 할지라도 조롱받지 않는다. 오직 사회적인 고민만이 ‘선비 납셨네!’라는 비웃음을 살 뿐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그런 풍토는 불쑥 드러났다. 사회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사람에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추모다. 원래 하던 일을 미루지 않고 더 붙들고 집중하는 게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길일 거다. 하지만 그래 봤자, 자신이 잘난 걸 사고를 이용해 과시하려는 사람이라는 평판과 마주한다. 그건 어떤 사람에게 “파이팅 넘치네요”라면서 실실 웃어도 되는 신호가 됨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