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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2년 12월호


올해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람은 스웨덴 태생의 독일 과학자 스반테 페보(Svante P?bo)였다. 그는 ‘고유전체학(paleogenomics)’이라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인류에 대한 이해 자체를 바꿨다. 그가 받은 노벨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8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독일 북쪽의 뒤셀도르프에서 30km쯤 떨어진 작은 마을 근처에는 네안데르(Neander) 계곡(옛 독일어로 Thal)이 있다. 이곳의 한 동굴에서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여러 개 발견됐다. 열띤 논란 끝에 이 뼈는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새로운 종의 것으로 인정된다. 뼈가 발견된 계곡의 이름을 딴 고인류 네안데르탈(Neanderthal)인이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다.

인류의 직계 조상이 아닐뿐더러 지금은 세상에서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한동안 야만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남성 165~167cm, 여성 158cm 정도로 키는 작지만 넓은 어깨에 온몸은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가득했다. 당연히 생존을 위한 수단은 사냥이었다. 때로는 배가 고프면 (어떤 사정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동료를 죽여서 먹기도 했다.

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와 수만 년간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10만~5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를 떠나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때 유럽, 서남아시아에는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오랫동안 추운 기후에 적응하면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누구나 이런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마주쳤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와 만나고 나서,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에 자취를 감췄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몰살시켰을까? 한동안 우세했던 이런 견해에 강력한 도전장을 들이민 과학자가 바로 이번 노벨상의 주인공 페보다.

페보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채취한 DNA로 유전체 해독에 도전했다. 그가 이 도전에 성공하면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 유전체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가 평균 2% 정도 겹쳤다(최소 1%에서 최대 4%). 과거 어느 시점에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서로 관계를 맺고서 후손을 낳았고, 그 흔적이 지금도 우리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이 둘은 서로 교류하면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상당히 긴밀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커플 사이 이종 교배의 신인류가 태어났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남아서 호모 사피엔스에 자연스럽게 섞였고. 과학자의 추적 연구 결과를 들어 보면 더욱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몸속에 새긴 호모 사피엔스는 어쩔 수 없이 네안데르탈인의 몇몇 특성을 내장하게 됐다. 그중에 아프리카와는 다른 혹독한 유라시아의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있고, 사냥한 고기의 지방을 더 잘 흡수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있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쩌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전달받은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졌다. 그 결과 몸속에 평균 2%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현생 인류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았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이종 교배의 신인류가 최종 승자였다.
페보의 연구는 진화를 둘러싼 진실도 우리에게 말한다. 네안데르탈인이든 호모 사피엔스든 ‘다름’을 배척하고 ‘순수’에 집착하던 이들은 결국 도태했다. 반면에 ‘다름’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잡종’이 됐던 이들은 마지막에 살아남았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의 의미가 남다른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