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랗고 말랑말랑하다. 그리고 따뜻하다. 임석규 파티시에의 마음은 갓 구운 빵을 닮았다. 자신의 빵집을 차리고 파티시에로 일한 지 어언 십 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평균 150개의 빵을 고아원, 경로당, 취약계층에 기부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어떤 건지를 아는 사람, 빵 한 조각이 품은 엄청난 가치를 아는 사람. 그가 내건 빵집의 간판이기도 하지만, 그가 바로 세상에서 제일 달달한 ‘스윗파티시에’다.
겨울이 코끝에 내려앉은 거리에 갓 구운 빵 냄새가 퍼진다. 구수한 냄새에서부터 온기가 느껴진다. 충남 아산 배방읍의 ‘스윗파티시에’에는 매일 오전 9시 반 다양한 봉사회 회원들이 ‘출근’한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빵을 기부해 온 임석규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제빵에 꽂힌 컴퓨터공학도
그는 몇 해 전 겨울 ‘건강한 재료로 맛있는 빵을 만드는 빵집’이란 신념을 담아 제과점을 개업한 이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의 빵 나눔을 실천해 왔다. “봉사나 기부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제가 줄 수 있는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인데요.”
임 대표는 여수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때부터 노릇노릇 고소한 빵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끔 어른들이 선물로 주곤 하던 빵은 특별한 기억이 됐다. 맘모스, 피자빵, 슈크림빵은 달달한 추억으로 남았다. 대학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왠지 취업이 잘 될 것 같아서였는데 휴학하고 군대에 가니 생각이 달라졌다. 군대에서 또래의 청춘들이 그렇듯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나가서 뭘 하지?’ 그때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상관없으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래, 제빵을 배우자.’ 어느 날 결심이 섰다. 컴퓨터공학도가 제빵을 배우겠다고 하니 주변에선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뜻을 말릴 순 없었다. 제대 후 졸업을 한 그는 여수에서 제일 큰 빵집에 취직했다. 맨흙에 벽돌을 쌓는다는 자세로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그는 2년을 ‘공부’했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이 공부였어요. 제과점이 제게는 학교였죠.” 빵집의 최고 셰프는 서울에서 최신 제빵 기술을 마스터한 사람이었다. 비록 지방에서 운영하는 제과점이었지만 그를 통해 최신 제빵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빵을 배우던 시절부터 주변에 보육원과 고아원에서 자란 친구들을 만났어요.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들으며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조금씩이라도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매일 150개의 빵 나눔 실천···빵도, 사랑도, 웃음도 나눌수록 커져요
여수에서 2년의 현장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더 넓은 제빵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충무로의 한 제과점에서 일하면서 재료과학에 눈을 떴다. “커다란 카스텔라를 만들 때 약 8kg의 계란을 넣고 거품을 휘핑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점심을 먹고 돌아와 보니 밀가루까지 넣은 반죽이 돌처럼 굳어 있었어요.” 애써 준비한 재료를 통째로 버리는 아픔을 겪으며 재료의 성질, 제빵 과정을 좀 더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재료공학 공부를 했다.
실수는 아프지만 그만큼 성공의 기쁨도 크다. 단호박빵이나 모찌식빵처럼 스스로 연구한 대로 제품이 잘 나오면 남다른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도 빵집의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피자빵이 그 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퀄리티가 나오고 손님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을 때, 그럴 때 파티시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12월이면 빵집을 차린 지 만 4년이 된다. 그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부터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고 가르쳤다. 밥 한 숟갈을 뜨면서도 들었던 일상의 가르침이 어느덧 습관처럼 몸에 밴 것일까. 빵집을 차리고 그는 스스로의 다짐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매일 평균 150개의 빵을 기부한 것이다. “매일 봉사단체에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빵을 전달해 주니 감사하고 뿌듯할 따름이에요.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어 빵 나눔만 실천하고 있어요.” 임 대표가 만든 빵은 조손 가정, 독거노인 등 적십자 희망풍차 결연가구 200여 세대 등에 전달된다. 최근에는 노인 복지회관 등에도 빵을 전달하고 있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매주 한 번 인근 선문대에 출강해 쿠킹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수업료는 받지 않는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서 온 사정이 어려운 해외 유학생들이 그의 제빵 수업을 듣는다. 인기가 많아 수강생이 200여 명에 이른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서투른 한글로 쓴 ‘러브레터’도 받았다. ‘빵을 만드는 행복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빵에 엄청난 즐거움도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편지들은 제과점 한편을 장식하고 있다. 적십자회장, 충남도지사 표창과 트로피도 있지만 그에겐 이 편지들이야말로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그는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세상은 지금보다 ‘나눔’이 더 흔해진 세상이기를 그는 간절히 바란다. 임 대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나눔 실천을 약속한다. 나눌수록 커지는 건 사랑만은 아니다. 빵도 마찬가지다. 나눠야 할 사람이 많기에 그의 반죽은 점점 커진다. 입가에 걸린 그의 미소도 덩달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