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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을 기억하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22년 12월호
 

어떤 음악은 평생 기억 속에 새겨진 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10대 시절 들었던 음악이 특히 그렇다. 몇 년 전 동료 음악평론가들과 함께 책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을 새롭게 기록하기 위한 책이었다. 내가 맡은 음반은 총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의 주역을 이번 달에 소개한다. 바로 전람회의 1집 (1994)이다. 

놀라웠다. 글을 쓰기 위해 앨범을 다시 쭉 감상하는데 가사를 안 봐도 노랫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하긴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이 음반을 갖고 있지 않았던 친구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노래방에 가서 김동률에 빙의라도 된 듯 ‘기억의 습작’을 열창했다. 이후 이 곡은 영화 <건축학개론>에 쓰이면서 다시 한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확언할 순 없지만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라드’를 꼽는다면 한자리를 차지해야 할 명곡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확실히 돋보이는 데뷔였다. ‘기억의 습작’ 외에도 ‘하늘 높이’, ‘향수’ 등 거의 전곡이 애청되면서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이쯤에서 솔직한 고백 하나 하려 한다. 적어도 내 주위에서 전람회의 1집을 전람회에 대한 매력에 끌려 구입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 바로 한 뮤지션의 존재 때문이었다. 고(故) 신해철이다.

“뭐라고? 신해철이 프로듀싱을 맡았다고?”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구입해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에서 첫 도입부를 듣자마자 “게임 끝났네”라고 느꼈던 곡들이 몇 개 있다. 대표적으로 두 곡을 꼽고 싶다. 하나는 아이유의 ‘밤편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습작’이다.

1집 이후 2년 만에 발표한 2집 역시 히트곡을 여럿 배출했다. 그중에서도 ‘취중진담’은 아마 지금도 어딘가의 노래방에서 불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애정한 건 다른 곡들이었다. 나는 취중진담을 전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수록곡 1번과 2번에 위치한 ‘고해소에서’와 ‘이방인’이다. 이 두 곡이 내 귀에 처음 흐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두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그게 대체 어떤 감정이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살면서 죄를 짓는 건 피할 수 없는 형벌이라는 걸,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죄는 불가피하므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덧붙이자면 이 두 곡은 쌍으로 함께 들어야 마땅하다. 하나만 듣는 건 무효다. 고(故) 신해철에게 다시 한번 경배를. 그는 1집에 이어 2집에서도 자기만의 인장을 전람회의 세계에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새겨  넣었다. ‘이방인’의 코러스는 언제 들어도 처연하게 아름답다.

이제 음악적인 얘기 좀 해볼까. 카니발의 동료 이적의 증언에 따르면 김동률은 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이상향은 기실 클래식 지휘자 비슷한 것이다. 그는 재즈와 클래식 화성을 대중음악으로 전이하는 과정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뮤지션이다. 1집에서도 그랬다. ‘여행’에서는 재즈 뮤지션 해리 코닉 주니어를 언급하고, ‘기억의 습작’에서는 음악 이론을 배우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을 절묘한 코드 변환으로 잊을 수 없는 후렴구를 창조했다. ‘Blue Christmas’와 ‘취중진담’ 역시 그가 재즈에 영향받았음을 말해 주는 증거들이다.

2집 이후 김동률은 전람회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음반을 공개한 뒤 모두의 예상대로 독립한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이 솔로를 통해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재즈와 클래식을 이상향 삼아 지속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음악은 참으로 반동(反動)적이다. 이렇듯 변하지 않을 거라는 바로 그 약속이 김동률 세계의 바탕을 형성한다. 그의 콘서트에 끊이지 않고 팬들이 몰리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