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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해와 함께 달린다, 울진에서 영덕까지
임운석 여행작가 2022년 12월호



찬 바람이 불어야 제맛인 게 있다.
제철 만난 대게와 쪽빛 바다를 벗 삼아 달리는
해안 드라이브가 그렇다.
울진을 시작으로 영덕까지 이어지는 해안 드라이브.
시원한 풍광에 눈이 즐겁고, 두툼한 대게 살에 입마저 즐거운
울진과 영덕으로 떠난다. 

출발~ 울진 해안 드라이브

경북 울진 해안 드라이브의 출발지는 갯내 물씬한 후포항이다. 대게로 유명한 곳이어서 거리 곳곳에는 찜통에서 대게를 삶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대게는 몸체가 커서가 아니라,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로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영덕을 떠올린다. 하지만 원조 마을은 울진군 평해읍 거일2리 마을이다. ‘거일’은 마을의 지형이 게알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리다가 게알이 기알로, 다시 거일로 변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마을이 대게잡이를 가장 많이 했다. 영덕이 대게의 명산지로 알려진 이유는 교통이 원활하지 못하던 1930년대 대게를 대도시에 공급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영덕을 중간 집하지로 삼은 까닭이다. 이후부터 대게 하면 영덕으로 통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거일2리 마을 앞 해안 도로변에 울진대게 유래비를 세워놓은 것은 울진대게의 자존심처럼 보인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항상 똑같은 바다가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해안도로를 달려보지 않은 사람의 좁은 생각일 뿐. 실제로는 가까운 바다와 먼바다의 색이 다르고, 수면 아래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다양한 색을 발한다. 또한 바람의 강도와 방향, 햇빛의 각도에 따라 색은 천차만별이니 팔색조가 따로 없다.
후포항에서 3km 남짓을 달리면 월송정에 이른다.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이라는 뜻이다. 주변에 하늘을 가릴 정도로 소나무가 우거져서 여름 피서지로도 안성맞춤이다.

동해안 국도 7호선을 낭만 드라이브의 대명사로 꼽곤 하지만 정작 최고의 명품 드라이브 구간은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지방도 917호선이다. 망양정에서 후포항을 잇는 102km 구간인데, 한마디로 운전할 맛이 난다. 차창 밖을 내다보면 기암괴석과 갯바위에는 어김없이 낚시꾼들이 자리를 지킨다. 흔히 낚시를 일컬어 시간을 낚는다지만 여기서는 시간뿐만 아니라 자연을 낚는 재미가 있어 보인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돼 완전한 풍경을 만든다.
후포항에서 20여km를 달리자 창밖 풍경이 이전과 다르다. 파란 바다에 오선지와 음표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서정적인 풍경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울진 해안 드라이브의 명물인 망양오징어거리에 도착한 것이다. 바닷물로 간을 한 오징어가 바닷바람과 햇볕으로 꾸덕꾸덕 마르는 중이다. 우유처럼 뽀얀 오징어 한 축을 사니까, 맛보기라며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준다. 두툼한 살집에 야들야들 부드럽기까지, 입에 착 감기는 맛이 일품이다. 오징어와 찰떡궁합인 맥주가 간절해진다.
 
송강 정철이 감탄한 관동팔경

울진 해안 드라이브의 절정은 덕신해변에서 망양정 구간이다. 일명 ‘쪽빛 바닷길’로 불리는 곳이다. 작은 포구와 촛대바위, 거북바위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잡아끈다.

길은 계속 흘러 송강 정철(1536~1593년)이 ‘관동팔경’으로 꼽은 망양정에 닿는다. 조선 숙종(1661~1720년)이 ‘관동제일루’라는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동해안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해맞이공원이 함께 조성돼 있어 산책을 겸해 쉬어가기 좋다.

망양정을 뒤로 하고 국도 7호선을 달린다. 질주 본능을 자극하는 곧게 뻗은 길이다. 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곳은 죽변항이다. 예로부터 화살을 만드는 재료였던 소죽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죽변등대가 있는 언덕에는 소죽이 무성하게 숲을 이룬다. 죽변항과 가까운 곳에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 있어 유명하다. 깎아지른 절벽에 세워진 세트장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그 뒤로 후정해수욕장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바닷물이 해변에 밀려들면 그 물거품이 선명한 하트 모양을 그려내 하트해변이라는 애칭도 있다. 해변을 뒤로하며 100km가 넘는 해안 드라이브를 마감한다.

 

다양한 볼거리가 넘치는 영덕

울진에서 출발한 드라이브는 영덕으로 이어진다. 영덕에서 특별한 일출을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찾은 곳, 바로 칠보산자연휴양림이다. 영덕은 80% 이상이 산으로 이뤄져 울창한 산과 숲이 바다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중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칠보산(해발 810m)은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금강송이 주종을 이룬다. 금강송은 몸통이 붉고, 맑고 향긋한 향을 뿜어낸다. 단단하고 쉽게 뒤틀리지 않아 예부터 궁궐 목재로 쓰였다. 또한 이 산은 더덕, 황기, 산삼, 멧돼지, 철, 구리, 돌옷(돌에 난 이끼) 등 7가지의 동식물과 광물이 풍부해 칠보산이라 불린다. 칠보산은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해맞이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휴양림이 있는 산기슭에 일출 전망대가 있어 시간과 날씨만 좋다면 누구나 일출을 볼 수 있다.

일출을 감상하고 찾은 곳은 고래볼해변이다. 영덕을 대표하는 이 해변은 겨울 바다 특유의 감성이 물씬하다. 양지바른 벤치에 앉아 수평선을 지그시 바라보며 ‘바다멍’에 빠져본다. 고래볼해변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피톤치드향 가득한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다. 야산 기슭에 조성된 이 숲은 개인이 가꾼 사유림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대중에 개방됐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만 오는 숨은 명소다. 숲속으로 발을 들이면 길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찬 메타세쿼이아가 반긴다. 숲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새들의 노랫소리도 감상해 보자.

강구항은 영덕을 대표하는 항구다. 그런 만큼 상인들과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시끌벅적하고 번화한 항구 대신 조용한 포구를 찾고 싶다면 축산항이 좋다. 축산항은 어촌 특유의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강구항에 비해 한결 호젓하다. 축산항에서 바다 쪽으로 우뚝 솟은 죽도산에 오르면 죽도산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축산항은 물론이고 동해의 비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영덕의 마지막 여행지는 부채꼴 모양의 해상 다리가 있는 삼사해상공원이다. 부채꼴 모양의 다리에 올라서면 바다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겨울에 가장 아름다운 색을 볼 수 있는 동해는 다양한 색을 자랑한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검푸른 바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하늘빛 바다, 은빛으로 출렁이는 신비로운 바다가 그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변함없지만 연인에게는 낭만, 아이들에게는 추억이고, 어부들에게는 삶 그 자체다. 그렇다면 나에게 동해는 어떤 바다로 기억될까? 

♣여행정보
• 울진 해안 드라이브는 시작점을 죽변항, 후포항 어디로 잡든 상관없다. 내비게이션에 ‘울진대게홍보전시관’이나 ‘죽변면주민자치센터’를 입력한다.
• 한국관광공사 콜센터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