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내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가’가 문제였다.
모든 관련 학문은 일제히 식량 증산과 분배 연구에 매달렸다. 덕분에 풍부한 시대가 됐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앞선 급박한 산업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양보다 질을 추구했다. 웰빙, 친환경, 유기농, 자연재배가 옵션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왔다. 이제 그다음,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가’의 시대가 비로소 오고 있다는 게 여러모로 감지된다. 나는 그 변화를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두 가지 다양성이다. 첫째, 이미 시작된 품종의 다양성이다. 제철에 접어든 겨울 딸기로 친다면 ‘설향’과 신품종들로 이야기할 수 있다. 2002년 한국이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에 가입하면서 식물 품종 재산권이 도입됐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외산 품종을 재배하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설향 이전에 우리가 먹던 딸기는 대개 일본 품종이었다. 재산권 발동까지 10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고, 농정은 각종 작물의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과채류인 딸기는 품종 개량이 빠르다. 2005년 충청남도농업기술원에서 설향 품종이 출원됐다. 재배 측면으로는 단위 수확량이 우세하고, 병충해에도 강해 친환경 재배 적용이 쉬웠고, 맛에서도 우수했다. 앞선 두 시대의 덕목에 잘 맞았다. 재배 비중이 2007년 28.6%로 시작해 빠르게 확산됐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딸기 다섯 중 넷이 설향 일색이었단 점이다.
2017년 무렵부터 다양한 딸기 품종이 쏟아져 나오며 겨울 딸기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금실, 아리향, 싼타, 킹스베리, 만년설 등 신품종 딸기가 재배 면적을 나눠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겨울 기준 신품종 딸기는 겨울철 과일 유통의 ‘핫이슈’다. 설화, 비타베리, 하이베리, 메리퀸, 홍희, 두리향, 알타킹, 써니베리 등 그야말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신품종들이 겨울 축제를 벌이고 있다.
품종이 다양하다는 것은 맛이 다양하다는 의미다. 맛에는 문자 그대로의 새콤달콤한 맛 이외에도 향과 질감과 수분감, 보디감까지 관여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설향은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향이 나고, 절묘하게 단맛과 연약한 신맛이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부터 주목받고 있는 비타베리는 단단하고 견고한 질감에, 비타민 사탕이나 요구르트 같은 단맛과 산미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 깊고 두툼한 단맛에 장미꽃잎 향이 스치는 금실은 또 어떠한가.
다양성은 각각의 개성을 보장한다. 언제나 같은 딸기, 설향만을 먹는 것은 미식의 영역에서 동떨어져 있다. 오늘은 설향을 먹지만 내일은 비타베리를 선택할 수 있고, 다음 주엔 금실을 고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양성의 미식이다.
둘째, 품질에 대한 다양성도 조금 더 먼 미래에 주류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여기서 얘기하는 품질은 ‘완성도’다. 이전의 친환경, 유기농 등이 추구하는 품질은 식품 안전성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설명한 맛의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로 완성도를 높이려는 장인(匠人) 생산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같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양은 적지만 대신 높은 질을 얻어낸다.
현재 50개 중 40개를 솎아내고 10개만 잘 키우는 장인들의 결과물은 시장의 보상을 합당하게 받기 힘든 구조로 돼 있지만, 이 새로운 시장 카테고리는 명백히 꿈틀대는 태동의 단계다. 최고, 최선의 완성도를 구현해 내는 데에 성공한 초고품질 농작물을 소비하는, 가격 민감도가 낮거나 없는 프리미엄시장이 새로이 카테고리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품종을 섬세하게 선택하고, 여러 가지 층위의 품질 사이에서 그때그때 여건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이런 다양성의 세상이 오는 것이 나에겐 무척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