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초, 너무 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사다. 사람에 따라 살아온 시간도, 바라는 바도 다르겠지만 새로운 해가 좋기를 소망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마음을 담아 새해 인사를 하고, 신년 운세를 확인한다. 포털사이트에 신년 운세라고 치면 토정비결, 별자리 운세, 신점, 타로점 등 다양한 운세가 바로 눈앞까지 배달된다.
정작 이 글을 쓰는 나는 신년 운세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소심하고 비겁한 마음 때문이다. 불길한 운세가 나오면 어쩌지? 무시하려고 해도 신경 쓰이지 않을까? 어차피 안 좋다면 왜 굳이 그 사실을 미리 알아야 하지? 복은 많이 받고 싶지만 안 좋은 운세는 외면하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동양의 운세 풀이에 토대가 되는 것은 ‘역(易)’ 혹은 ‘주역’이라 불리는 책이다. 『주역』은 공자와 맹자의 유학과 노자와 장자의 도가철학 모두를 주요 경전으로 다룬다. 오늘은 유학의 관점에서 『주역 계사전』과 함께 운세의 길흉화복을 생각해 본다. 본래 『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하지만 『역』의 논의는 그보다 심오하다. 유학과 도가철학을 모두 다루고 있는 데다 점을 칠 때 길하거나 흉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좋음에 대한 기준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 계사전』에서는 길(얻음)과 흉(잃음) 자체보다 회(悔)와 린(吝)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고 한다. 회는 ‘후회’하다라고 하듯, 뉘우치는 마음이다. 린이란 ‘인’색하다 할 때의 의미와 통하며, 부족하고 그로 인해 부끄럽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후회하거나 부족해 부끄럽다는 건 누가 봐도 좋은 뜻이 아닌데, 왜 이것이 길과 흉보다 더 중요할까?
우리는 대개 좋거나(길), 나쁘다고(흉) 할 때 대학에 붙거나, 취직하거나, 수익이 생기는 것 등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건을 떠올린다. 그러나 삶은 사건의 단순 나열이 아니다. 사건에는 반드시 나의 마음과 태도, 결과가 따라온다. 그래서 길과 흉에도 언제나 회와 린의 마음이 따라온다.
좋은 사건을 만나면 사람의 마음이 들뜨기 쉽다. 마음이 들뜨면 주변을 잘 살피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일이 이어지면 자신을 과신하고, 경솔하게 움직이기 쉽다. 그러다 보면 아쉽고 부족한 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준비를 더 해야 했어’ 등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반성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좋지 않은 일이 장기적으로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길도 흉도, 그 순간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변화하여 결국은 ‘복’되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회린의 마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마음을 염두에 두는 삶의 태도는 지난 일을 돌아볼 때 개별 사건을 성패로만 평가하지 않고 사건의 앞뒤까지 살펴보며 자신의 넘치거나 부족했던 점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일을 만들기 전에, 그리고 일을 진행하면서 회와 린의 태도를 잊지 않는다면 그 일 자체나 일이 불러온 감정 자체에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일이 과하거나 모자라 후회되거나 부끄러울 수 있다는 마음을 염두에 두면,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기객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에 충실하게 사는 일은 역설적으로 ‘지금’이 전부가 아니며, 그 지금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반드시 어제가 되고, 내일은 다시 지금이 되기 때문이다. 진실된 삶은 그 변화와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역』은 말한다. 2023년 새날, 나의 지금을 만들어준 과거와 앞으로 다가올 지금이 커다란 흐름 속에 계속 변화하며 진실되고 조화롭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