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 가본 사람이 많지 않다. 울릉도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오징어, 호박엿, ‘울릉도 트위스트’나 ‘독도는 우리 땅’ 등 1980년대의 울릉도로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요사이 울릉도엔 오징어가 전처럼 풍년으로 나지 않는다. 대신 단새우, 닭새우, 도화새우의 값을 더 높게 친다. 양이 많지는 않아 귀한 건 마찬가지다. 늙은호박을 이용한 엿도 있지만 육지의 단호박 분말을 이용한 호박 상품들이 더 맛있다.
울릉도로 가는 항로가 늘고 거대한 크루즈 노선까지 신설돼 웬만한 기상 악조건이 아니라면 섬에 갇힐 일은 없다. 뱃머리가 트위스트를 춰 오가는 길이 고생이라는 이야기도 완전한 옛말이 될 예정. 2025년을 목표로 공항도 짓고 있다. 현지인들은 2027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울릉도의 참맛을 알게 될 사람은 이제 공항만 생기면 흔해질 터다.
어딜 가든 맛은 농업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번 농업 이야기는 엉뚱하게도 울릉도 공항으로부터 출발한다. 울릉도 공항은 인공섬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산 하나를 꾸역꾸역 깎아 평평하고 긴 활주로를 만들고 있다. 태풍 경로상에 있어 허구한 날 해안도로부터 침식되니 인공섬 공항은 도무지 불가능한 모양이다. 섬 전체가 화산으로 된 곳이라 비행기가 내릴 수 있는 평지도 없다.
공항은커녕 사람이 살 평지도 없다. 농사도 다 산비탈에 짓는다. 경작지 경사도가 가파르면 63도까지 이른다. 울릉도 경작지의 64%가 20도 이상의 급경사지에 있다. 그래서 울릉도에선 어딜 가나 비탈면만 있으면 모노레일이 눈에 띈다. 농사를 가능하게 하려고 밭마다 깔아주는 모노레일이다. 그곳에 푸릇푸릇 자라는 것이 모두 울릉도의 참맛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것들이다.
우선 기본은 명이다. 울릉도를 통해 육지로 확산돼 장아찌, 김치로 우리 식생활에 파고들었다. 정식 명칭부터가 울릉산마늘이다. 원조인 울릉도 명이는 육지 것보다 둥글고 보드랍다. 억센 것이 없이 향은 또 진하다. 울릉도 사람들은 쌈이나 물김치로도 먹는다. 전래 음식으로는 곡물과 함께 죽으로 끓인 명이범벅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부지깽이와 미역취다. 이 둘은 국화과 식물로 각각 섬쑥부쟁이, 울릉미역취라는 정식 명칭이 있다. 둘 다 삶고 말린 후 치대 묵나물로 만든다. 생김새는 언뜻 비슷한데 맛이 다르다. 부지깽이는 아궁이의 흰 재 같은 텁텁한 향을 갖고 있다. 미역취는 미역 맛이 난다고 할 정도로 아작아작한 식감에 감칠맛도 낸다. 찬장에 두면 든든한 흔하고 저렴한 나물로, 김밥도 말고 솥밥도 짓는다.
고급 나물로는 삼나물과 참고비가 있다. 삼나물은 눈개승마를 울릉도에서 부르는 이름인데, 이름을 달리할 정도로 육지의 눈개승마와는 속한 차원이 좀 다르다. 고기를 먹는 듯한 두툼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이다. 섬고사리라고도 하는 고비는 고사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양치식물로, 울릉도에서도 귀하게 쳐 주로 제수용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삼나물은 여전히 농사 면적이 존재하지만, 고비는 농사짓는 집이 줄어들어 점차 맛보기 어려워지는 추세다.
더덕과 물엉겅퀴 또한 독특하다. 육지와 똑같은 더덕을 섬더덕이라고 부를 뿐인데, 이름이 다를 만치 특징 차이가 난다. 심이 없어 억세지 않고, 물을 많이 머금어 아삭거리는 식감이 즐겁다. 물엉겅퀴도 육지 것과 달리 가시가 생기지 않아 식용으로 쓴다. 재조명받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재배면적이 느는 추세다. 나물정식집마다 된장국으로 내고 있는데, 그 외에도 꽁치조림, 김치 등으로 현지인들이 조리해 먹는다.
고로 울릉도에서 가장 높게 사고 싶은 참맛은 경사지에서 재배하는 반 야생의 나물들이고, 울릉도서 만족도 높은 식사를 하려거든 첫 끼는 무조건 나리분지의 몇 군데 식당 중 하나를 골라 나물정식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단, 혼자 가서는 비빔밥만 주문 가능하니 딱 부러진 정식을 먹으려거든 꼭 일행과 함께 갈 것.
* 도움말: 남구연 울릉군농업기술센터 기술보급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