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여가 시간에 책을 펼치지 않은 지 수개월째다. 바빠서 책 읽을 겨를이 없었다고 자기합리화를 해봤지만 사실 최근에 필자의 여가 시간을 채우고 있던 건 OTT와 유튜브 그리고 소셜미디어였다.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고(혹은 하면서) 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것은 물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잘 시간이 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필자만의 문제는 아닌지 ‘도파민 중독’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도파민은 쾌감, 즐거움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세로토닌, 엔도르핀과 함께 ‘행복 호르몬’으로 불린다. ‘행복’을 관장하는 중요한 호르몬임에도 ‘중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으며 부정적인 인식이 커진 이유는 자원적 풍요와 기술의 진화가 도파민 욕구를 더 쉽고 빠르게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도파민 자극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이 재생되는 숏폼 콘텐츠가 도파민 중독에 이르기 쉬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듯 소셜미디어에서도 ‘도파민’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다. 2020년 11월 2,200건 언급되던 도파민이 올해 10월, 3년 만에 6만6,122건으로 무려 30배 상승했다.
“자극적이고 재밌는 웹툰 추천 좀. 유치하지 않은 걸로 도파민 필요함.”
소셜미디어에서 ‘도파민’은 재미와 쾌락을 대신하는 말이다. 도파민(으로 대변되는 재미와 쾌락)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갖는 잠깐의 쉼이자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이 욕구가 일상을 지배하며 이것 없이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의존하게 됐을 때다.
도파민을 얻기 위해 중독되는 대상도 다양하다. 도파민과 함께 언급되는 중독의 대상을 분석해 보면 스마트폰부터 게임, 쇼핑뿐만 아니라 설탕, 탄수화물 같은 음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운동 중독, 활자 중독 같은 비교적 건강한 축에 속하는 것도 있지만 즉각적인 즐거움이 주어지는 다른 중독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다.
“요새 도파민 중독 상태인 거 같아요. 두 시간짜리 영화 보는 데에 집중이 도저히 안 되고 요약본도 배속해서 보고 숏폼 엄청 보고…. 매일 핸드폰 하지 말아야지 다짐은 하는데.”
이제 막 확산하기 시작한 도파민에 대한 담론 중에서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도파민(재미와 쾌락)을 찾는 목소리만큼이나 도파민 자극에 의존하는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목소리도 많다는 것이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도파민 자극을 유발하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도파민 디톡스’도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아침에 30분 동안 핸드폰 보지 않기’, ‘쇼핑몰 알람 설정 끄기’, ‘스크린타임(앱 사용시간 제어 기능)으로 제한 두기’ 등 변화된 자신을 바라며 실천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 즐거움이 너무 많기에 도리어 즐거움을 느끼기 어려워진 도파민의 역설. 뜨거운 여름이 있었기에 과일이 다디달게 완성되는 것처럼 삶에서 귀중한 것은 그냥 얻어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필자도 이 글을 쓰면서 잠깐의 자기반성을 하며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샀다. 막 도착한 책에는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베냐민의 말이 적혀 있었다. ‘환자의 병은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는 데서 치유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