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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의 나잇값, 나는 알고 있을까?
허유선 『인생에 한 번은 나를 위해 철학할 것』 저자 2023년 12월호
 


2023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지금은 나이를 세는 기준이 생일이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해를 맞을 때마다 한 살 더 먹는 일에 익숙하다. 나이를 먹는 만큼 우리의 나잇값도 늘어간다. 

일견 ‘나잇값’이란 특정 연령에 대한 사회적·관습적 규범과 기대를 충족하는 일로 보인다. ‘이제 나잇값을 해야지’, ‘저 사람은 나잇값을 못해’라는 표현이 그렇다.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더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나 자신을 다스리는 법,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세상사에 대처하는 법에 능숙해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은 마찬가지다. 

만일 나잇값이 그런 것이라면 나이를 먹는 일은 참으로 부담스럽고 부자유한 일이며, 나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자유롭지 않고 점차 무거워지기만 하는 것, 내 뜻대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을 반길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은 대개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 되고, 나잇값을 하는 것은 어려운 임무가 된다. 요구는 많아지는데 정작 나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거나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살아온 날들이 그만큼 축적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은 수많은 사건과 만남, 그로부터 생기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 그것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생각, 행동, 감정들로 이뤄져 있다. 물론 반갑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것만 있지는 않다. 불만족스럽고 아쉽고 후회되고 부끄럽고 괴로운 것들도 있다. 그런 모든 것을 경험하고 소화하고, 소화한 나로 다시 세계를 만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살아온 날이 쌓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가 온전히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사건, 생각, 감정들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이는 도무지 공짜로는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이를 그냥 자연히 먹는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나잇값은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어떻게’ 겪어왔는지에 관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어떻게’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겪는가에 따라 ‘무엇’이 달리 규정되기 때문이다. 

나잇값이란 타인과 비교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만들고 엮어올 수 있던 이야기이자 의미의 묶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쌓아온 이야기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자 그런 나로서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그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나잇값은 임무라기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인생의 의미를 확장해 가는 활동인 셈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본래 그런 뜻이다. 우리는 이 말에서 자기 분수에 맞는 주제 파악을 떠올리기 쉽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너 자신의 영혼을 돌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사회가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당연한 듯 요구하는 모든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실상 그 요구는 각자가 저마다 나름대로 잘 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는 나 자신으로 잘 산다는 것을 잊기 쉽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잊고 살아온 나로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억하고 이해해야 한다. 나의 마음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그에 따라 진실되게 행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알고 잘 살려 하는 나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마주했고, 마주하는 이 날들을 ‘어떻게’ 겪고 소화하고 반응하며 그려가고 있을까? 새롭게 한 살을 먹기 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의 나잇값에 대한 귀 기울임과 이해의 시간이다. 새로운 우리의 나잇값이 자신에게 진실하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느끼고 쌓아가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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