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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과학이 밝힌 ‘좋은 잠’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4년 02월호


지난해 연초에는 하루 5분이라도 명상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이런 권유를 했었다. 뜻밖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 칼럼을 읽고서 명상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괜한 책임감에 올해도 한가지 제안을 해보련다. 올해는 좋은 잠을 자는 것을 목표로 해보면 어떨까.

 한 2년 전쯤에 이 지면에서 ‘잠의 과학’을 수박 겉핥기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잠을 잘 자면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비만도 예방하고, 심지어 노년의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서 잠을 잘 잔다는 것의 과학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이 자리에서는 좋은 잠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6시간에서 8시간, 하루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를 자다 보니 누구나 경험으로 안다. 분명히 수면시간만 놓고 보면 잠을 충분히 잔 것 같은데,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지 않고 종일 찌뿌둥한 느낌으로 멍하니 생활할 때가 있다. 반면 똑같은 시간을 잤는데도 어떤 날은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 정도로 상태가 좋을 때도 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잠의 비밀을 파헤치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현대 과학은 잠에 관심이 없었다. 잠은 그저 관습적으로 하루 종일 지친 심신을 쉬는 일이라고 여겼다. 선구적인 과학자 소수의 노력으로 1950년대부터 잠에도 여러 단계가 있고, 그 단계마다 수행하는 일이 다르다는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8시간을 잠잘 때, 그 잠은 똑같은 색깔이 아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면 처음에는 의식이 있다가 점점 외부 자극에 둔해지는 상태가 된다. 이때는 옆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고 부분적으로 기억도 난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거나 가볍게 흔들면 곧바로 잠에서 깬다. 바로 ‘얕은 잠’ 상태다. 낮에 꾸벅꾸벅 졸 때도 바로 이런 상태다.

 이 얕은 잠 상태에서 방해받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수면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이 되면 우리가 흔히 ‘업어 가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하는 ‘깊은 잠’을 자는 단계가 된다. 이때는 근육도 이완돼 있고 뇌 활동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뇌파도 느리다. 눈의 안구운동도 점점 느려져서 거의 없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깊은 잠을 자던 사람의 뇌파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깨어 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뇌파가 빨라진다. 바로 렘(REM)수면 단계다. 깊은 잠을 잘 때 거의 멈춰 있었던 안구가 다시 빠르게 움직이는(Rapid Eye Movement) 모습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렇게 우리가 하룻밤 잠을 잘 때는 ‘얕은 잠 → 깊은 잠 → 얕은 잠 → 렘수면’의 수면 주기(약 90분)가 4~5회 반복된다. 이상적인 수면이라면 8시간 잠을 자는 동안 깊은 잠은 약 1시간 15분 정도(약 15%), 렘수면은 2시간 정도(약 25%)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잠자기 시작할 때 깊은 잠의 비중이 크고, 새벽으로 갈수록 즉 깰 때가 될수록 렘수면의 비중이 커진다.

 우리가 잠을 자고 나서 ‘잘 잤다’ 느낌이 들 때는 바로 이 깊은 잠(약 15%)과 렘수면(약 25%)의 비중이 적절하게 안배됐을 때다. 반면 꾸역꾸역 8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지만 깊은 잠이나 렘수면의 비중이 작아서 얕은 잠으로 수면시간 대부분을 채우고 심지어 자기도 모르게 자다 깨다 했다면 몸이 찌뿌둥한 상태로 다음날 하루를 보내게 된다.

잠은 힘이 세다

이상적으로 수면시간의 15%를 차지하는 깊은 잠 단계에서는 뇌의 노폐물 청소가 이뤄진다. 낮에 활발히 활동하는 동안 뇌의 신경세포는 다양한 대사 산물과 독성 물질 같은 부산물, 다시 말하면 쓰레기를 내놓는다. 이 쓰레기 가운데는 치매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단백질 찌꺼기도 있다.

 우리가 잠잘 때, 특히 깊은 잠 단계에서 뇌척수액이 이 뇌에 쌓인 쓰레기를 씻어서 뇌정맥으로 배출한다. 만약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잠을 자더라도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뇌에 쌓인 쓰레기가 씻겨 나가지 못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도 그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섬뜩한 실험 결과도 있다. 건강한 성인을 하룻밤 꼬박 새우게 한 다음에 씻겨 나가지 못하고 뇌에 남아있는 단백질 찌꺼기(베타아밀로이드) 농도를 조사해 봤다. 잠을 제대로 잔 경우와 비교했을 때, 단백질 찌꺼기 농도가 25~30% 정도 증가했고, 뇌 곳곳에 들러 붙는 현상도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뇌의 신경세포는 잠잘 때 낮 동안 습득한 정보를 선별한다. 머릿속에 오랫동안 담아둬야 하는 정보는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강화해서 고정하고, 쓸데없는 사소한 정보는 연결망을 해제한다. 시험을 앞두고 잠 안 자고 공부하는 학생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이 깊은 잠을 잘 때 주로 일어난다.

 이제 렘수면을 살펴보자. 빠른 뇌파와 안구 운동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렘수면 단계에서 뇌는 거의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하다. 이렇게 활발한 뇌 활동의 효과가 바로 꿈이다. 흥미롭게도, 이 단계에서는 활발한 뇌 활동과 달리 근육 활동은 중단된다. 우리가 도망치는 꿈을 꿀 때 다리를 가만히 두는 것은 바로 이런 메커니즘 탓이다.

 그렇다면 렘수면과 꿈의 기능은 무엇일까. 현재까지 알려진 중요한 기능은 감정 조절이다. 예를 들어 낮 동안에 경험한 부정적인 감정을 렘수면과 꿈을 통해서 해소한다. 또 충분한 렘수면은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처럼 창의적인 사고도 자극한다. (꿈에서 고심하던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는 그 수많은 도시 전설도 근거가 있었다.)

 사실, 잠의 기능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잠은 면역 기능에서 무슨 중요한 역할을 할까?) 또 불면증, 과다 수면, 수면 무호흡증 같은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우울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2~3배 높다. (잠이 어떻게 감정 조절을 하기에 이런 정신 질환과 관계가 있을까?)

 아무튼, 결론은 명확하다. 나에게 맞춤한 충분한 수면시간(성인 기준 하루 6~8시간)을 확보하고, 깊은 잠과 렘수면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좋은 잠을 자야 한다.

 여기서 두 가지 팁. 한국에서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 가운데 5분의 1(남성 25%, 여성 15%) 정도는 수면 호흡 장애가 원인이다. 코를 심하게 골거나 자다 숨이 막혀서 깨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잠잘 때 기도로 공기를 주입하는 특수마스크(양압기)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그럼, 내가 잘 자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병원에 가서 ‘수면 다원 검사’ 같은 걸 받지 않고서도 좋은 잠을 자는지 쉽게 알아볼 방법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슬립 ㅇㅇ’ 같은 자신의 수면 패턴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이 아주 많다. 기본 기능은 무료라서 돈도 안 든다. 새해엔 우리 모두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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