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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인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4년 11월호

한국인은 ‘단일 민족’일까? 민족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답변이 제각각이겠다. 사실 저 질문에는 은연중에 한국인은 혈연으로도 비교적 단일한 집단의 후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집단이 한때는 시베리아 남쪽 바이칼호부터 동쪽 사할린섬에 이르는,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고 믿는다.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일도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정말로 한국인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상상과 소망과 신화의 영역에 존재해 왔던 이 질문에 과학이 하나둘씩 답을 내놓고 있다. 수만 년 전, 수천 년 전의 흔적에서 당시 살았던 사람의 유전자 전체(유전체)를 분석해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비교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머릿속의 한반도가 있는 동아시아 지도부터 정정하자. 약 1만1,700년 전부터 지구 전체가 따뜻해지기 전까지 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는 혹독한 빙하기였다. 전 세계 바닷물의 상당수도 얼음에 갇혀 해수면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예를 들어 1만8천 년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남쪽에는 약 260만 년 동안 거대한 대륙이 있었다. 순다랜드(Sundaland). 이 대륙은 지금의 말레이반도, 인도네시아와 해수면이 낮아 뭍으로 드러난 그 주변 땅을 포괄했다. 약 6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간 최초의 인류가 동아시아에 처음 도착한 곳이 순다랜드였다.

그러니까 최초의 아시아인은 히말라야를 넘어서 온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인도차이나반도와 과거의 순다랜드에서 북쪽이나 남쪽으로 이동했다. 북쪽, 즉 중국으로 이동한 이들이 지금 동아시아인의 선조다. 놀랍게도 남쪽으로 이동한 이들은 순다랜드를 넘어서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이니아를 포괄하는 또 다른 구대륙 사훌랜드(Sahulland)로 이동했다.

시야를 좁혀 보자. 빙하기 때만 해도 한반도는 ‘반도’도 아니었다. 서해는 중국과 이어지는 광활한 평야였다. 한반도에서 발원하는 압록강, 한강, 금강, 영산강은 서해 평야를 가로질러 지금의 제주도 인근까지 흘러가서야 바다를 만났을 테다. 그러니 빙하기 때 한반도 고대인은 산지가 태반인 한반도까지 오지 않고 서해 평야에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빙하기 동아시아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과학이 밝혀낸 한국인의 기원을 하나씩 따져 보자. 과학이 말하는 한국인의 기원은 ‘단일 민족’도 아닐뿐더러 지극히 평범하다.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법
과거에는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방법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유물의 유사성을 추적하는 일이다. 중국과 한반도 혹은 일본에서 유사한 형태의 유물이 발견되면 그 유물 문화를 가진 집단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주했으리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한 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유행을 따라 청바지를 입을 수 있듯이 사람이 아닌 문화만 전파됐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언어의 유사성을 추적하는 일이다. 만약 양쪽 언어의 어휘에서 특정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의 유사성이 우연을 능가할 정도로 많다면 한때 같은 언어를 썼던 집단이 분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명백하다. 미국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콜라, 햄버거, 컴퓨터 같은 외래어를 사용한다. 언어 역시 사람의 이동 없이 전파될 수 있다.

고유전체학은 바로 이 대목에서 힘을 발휘한다. 특정한 시간 차이를 두고 중국과 한국의 특정 장소에서 당시 유물을 남겼던 사람의 유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양질의 시료를 채취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유전체를 분석·비교해 두 장소에 살았던 사람이 실제로 혈연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인의 기원 혹은 넓게는 인류의 이주 경로를 추적하는 과학자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차근차근 그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와 서남아시아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한 인류 가운데 일부가 순다랜드에 도착하고 나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들은 어떻게 한반도로 넘어왔을까?

한반도로 넘어온 사람들의 운명
사실 처음에 한반도는 그다지 매력적인 서식지가 아니었다. 초기의 인류는 태반이 산지라서 숲이 우거진 한반도보다는 광활한 평야(초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의 중국 북부, 만주, 몽골 등을 포함하는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중국 베이징 인근 티안유안 동굴에서 채취한 약 4만 년 전의 인골을 염두에 두고서 이들을 ‘티안유안인’이라고 부른다.

이즈음에 순다랜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추위를 싫어했는지 상대적으로 따뜻해 보이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들이 있다(약 5만 년에서 3만 년 전). 어쩌면 당시는 육지였을 서해 평야, 한반도 남쪽, 일본의 초기 정착민이 된 이들을 ‘조몬인’이라고 부른다. 조몬인은 빙하기가 끝나고 나서 섬(일본)에 고립되면서 동아시아를 지배한 티안유안인과는 유전적 차이가 커졌다.

한반도가 정착지로 부각하기 시작한 것은 약 1만1,700년 전부터 지구가 따뜻해지고 나서(간빙기) 서해 평야가 물속으로 사라진 다음부터다. 간빙기에도 갑작스럽게 온도가 떨어지는 시기가 있었고(특히 8,200년 전), 이때마다 혹독한 추위를 피해서 한반도로 이주하는 집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무르강 집단이 그랬다. 이 대목에서 또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의 인구밀도, 특히 한반도의 인구밀도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을 정도로 낮았다. 즉 특정 집단이 한반도에 이주했다 하더라도 그 후손이 계속해서 이 땅에서 번창하는 아름다운 결말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반도는 북적대다가 다시 인적이 드문 일이 반복됐다.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한 아무르강 집단도 그랬다. 그들이 이곳에서 대단한 문명을 일궜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그들이 계속해서 혈연을 잇고 번창해 지금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혈연적 조상이라고 함부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재까지 강하게 영향을 준 집단은 그 후에 융성한 랴오허강 집단이다. 

랴오허강 집단은 세계 최초로 조와 기장 농사를 짓기 시작한 황허강 집단과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중국 남부 양쯔강 집단 그리고 유목민이었던 동북쪽 아무르강 집단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졌다. 바로 이들이 약 3,500년 전부터 소규모로 여러 차례에 걸쳐 한반도로 유입하기 시작한다. 이즈음에 한반도에서 벼농사도 시작됐고, 인구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때 바다를 건너가 일본까지 영향을 줬던(야요이 문화) 한반도의 전성기는 약 2,300년 전에 다시 위기를 맞는다. 이 시점에 중국에서는 주나라가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가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의 역사책에 한반도의 고조선이 등장한다. 드디어 역사 시대가 시작했다. 이렇게 역사 시대가 시작하고 나서도 한반도는 피한지로 북쪽의 인구 유입이 계속됐다.

결론적으로, 현대 한국인의 유전체를 수천 년, 수만 년 전의 고인골의 유전체와 비교해 보자. 현대 한국인은 유사성 면에서 양쯔강 이남 집단의 유전체와 3분의 2를, 아무르강 유역 집단과 3분의 1을 공유한다. 현대 중국의 한족과 가장 유사하고 뜻밖에도 고시베리아인 집단의 유전체를 갖고 있는 몽골인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 한국인은 고시베리아인 유전체가 없다.)

이것이 현재까지 과학이 밝힌 수만 년에 걸친 한국인의 기원사다. 양쯔강, 황허강, 아무르강의 집단이 랴오허강에서 섞여서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지난한 과정을 염두에 두면 한반도야말로 과거 동북아시아의 용광로였다. 어쩌면 기후위기, 인구감소, 저성장 시대에 한반도가 앞으로 나아갈 길도 다시 새로운 용광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이 짧은 요약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한국인의 기원을 둘러싼 자세한 사정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고 싶은 독자가 분명히 있을 테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최근에 펴낸 『한국인의 기원』을 추천한다. 고유전체학이 인류의 기원과 이동을 추적하는 생생한 현장을 확인하려면 에블린 에예르의 『유전자 오디세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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