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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겨울이야말로 미스터리의 계절
김혼비 에세이스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다정소감』 저자 2024년 11월호


이 장르는 유독 이름이 많다. ‘추리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소설’,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미스터리’ 등 사람마다 칭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역으로 이 장르의 이름을 말했을 때 떠올리는 책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 등장해서 범죄를 둘러싼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퍼즐 맞추듯 풀며 사건을 해결하는 고전적인 책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주인공이 특정 범죄의 진상이나 범죄자를 추적하고 추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역동적인 사건들(이를테면 화려한 난투극이나 차 추격전 같은)이 롤러코스터처럼 펼쳐지는 책을 떠올릴 것이다. 

『미스터리 가이드북』은 이런 난무하는 ‘이름’들을 정리하고, 난무하는 개념들을 그 정리된 이름에 맞춰 명확하게 분류하며 시작하는데, 와, 나는 여기서부터 이 책에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 장르의 이름과 개념, 장르의 속성을 이토록 명백하고 시원하게 압축적으로 정리한 글이 있었던가. 동시에 빈틈없이 꼼꼼해서 허를 찌르기도 한다.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자아내는 예스러운 정서가 좋아서 오랫동안 이 이름을 고집해 온 내가, 타 장르들을 로맨스, SF, 판타지라고 명명하는 게 일반화된 것을 고려하면 (그 장르들을 더 이상 ‘연애소설’, ‘과학소설’, ‘환상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대구를 맞추기에도 ‘미스터리’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에 설득된 것처럼.

그렇게 깔끔한 정리로 모두를 같은 ‘개념의 출발선’에 세운 다음, 이 책은 그들을 미스터리의 역사 속으로, 역사적 흐름에서 자연스레 파생돼 외연을 확장하는 다양한 서브 장르들 속으로, 미스터리계의 양대 산맥인 영미권 미스터리와 일본 미스터리의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들로, 미스터리에 쓰이는 기본적인 기법들을 소개하고 각 기법이 훌륭하게 반영된 기념비적인 작품들 속으로, 그러니까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는 미스터리의 세계로 깊숙이 데려간다. 얼마나 신나는 여행인지. 

미스터리에 정통하기로 첫손에 꼽히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자 30여 년의 세월을 미스터리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키고 알리는 데 바쳐온 저자 윤영천이 이끄는 대로 신나게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 여기저기에 파편적으로 존재했던 미스터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타고 하나의 타임라인 위에 착착 정리가 되는 짜릿한 기쁨과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빈칸들을 빼곡히 채우는 지적 충만감으로 마음 한편이 벅차오른다. 애거사 크리스티부터 앤서니 호로위츠까지, 에도가와 란포부터 요네자와 호노부까지, 서양 고전 미스터리와 일본 본격·신본격 미스터리를 편애하는 나는, 이 책을 읽고 하드보일드 등 그다지 관심 없던 장르들을 다시 보게 됐다. 깊어진 시선만큼, 넓어진 스펙트럼만큼, 미스터리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미스터리 장르의 개론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면,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찾으며 자신만의 각론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p.9

무엇보다 이 책에는 책 밖으로 확산하는 인덱스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에필로그에는 그야말로 시대와 각 서브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엄선한 주옥같은 ‘추천 미스터리 100선’까지 있다. 흔히들 미스터리를 읽기 좋은 계절로 여름을 말하지만, 나에겐 언제나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웅웅대는 바깥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따듯하고 아늑한 곳에서 정신없이 미스터리와 미스터리 사이를 거닐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창밖으로 이른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순간을 만끽하기에도, 기나긴 밤의 한구석에서 미스터리에 푹 빠져 밤을 지새우기에도 겨울만 한 계절은 없다. 미스터리 책들을 영혼의 장작처럼 잔뜩 쌓아놓고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마음속에 지펴지는 불을 벽난로 삼아 아늑하고 근사한 겨울을 보내보기를. 물론 책 속 세상은 가차 없고 위험하겠지만, 그것이 ‘미스터리 독자’의 특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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