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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버투어리즘을 넘어 더 아름다운 여행을 꿈꾸며
정여울 『감수성 수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2024년 11월호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것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오버투어리즘’을 향한 걱정 어린 시선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한숨이 나오면서도 어쩐지 새로운 의지가 샘솟을 때가 있다.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것 또한 여행자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기에. 그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즐기고, 느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아끼며,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베네치아는 현재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관광객 없는 베네치아 또한 상상할 수 없다. 베네치아는 관광이 일군 도시이며, 여행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 또한 베네치아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 현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여행, ‘나’를 넘어 ‘우리 모두’를 생각하는 여행을 시작할 때가 됐다. 나만 행복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현지인도 여행자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여행, 나아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도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여행자의 열정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도시
베네치아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베네치아 본섬과 무라노섬, 부라노섬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베네치아, 무라노, 부라노는 마치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들처럼 서로를 닮았으면서도 또 저마다의 분명한 특색을 갖고 있다. 베네치아 본섬이 엄청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때도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잠시 무라노섬이나 부라노섬으로 가면 훌륭한 은신처를 찾은 듯 은밀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면서도 베네치아 특산품인 종이죽으로 만든 수제 가면이나 유리공예 제품들은 세 섬 모두가 공유하는 아름다운 교집합이다. 베네치아에서는 모든 것이 비싸다. 심지어 조그마한 냉장고 자석조차 베네치아에서는 비싸지만, 부라노섬에 가면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색칠한 냉장고 자석을 세 개에 5유로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팔기도 한다. 무라노섬에서는 장인들이 마술쇼처럼 뜨거운 유리를 입으로 불어 직접 유리 제품을 만드는 화려한 유리공예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어 여행자들은 유리공예박물관으로 속속 집결한다.


부라노섬에서는 어느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형형색색의 벽과 지붕들로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섬의 풍경을 한 아름 선물받을 수 있다. 부라노섬에서는 무작정 최대한 오래 산책하며 골목길 곳곳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체험해 보는 것이 좋고, 무라노섬에서는 유리공예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세심하게 감상하며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선물하고 싶은 작지만 멋진 선물을 골라보는 것도 좋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물 때문에 위험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장마나 홍수가 심해질 때마다 베네치아 곳곳은 물에 잠긴다. 지구온난화로 베네치아의 물난리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럴 때 여행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길을 선택한다. 카페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데도 관광객들은 오히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찰방찰방’ 물놀이를 하듯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며 그 순간을 즐긴다.

나는 베네치아 여행자들을 보며 ‘적응’의 놀라운 힘을 깨닫는다. 베네치아의 우기라 불리는 시기에는 관광을 꺼리던 문화조차 사라져갈 정도로, 베네치아는 365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람들은 얇은 비닐 커버를 신발에 끼운 상태로 첨벙첨벙 발이 물에 빠지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베네치아 곳곳을 거침없이 누빈다. 저럴 정도로, 물에 흠뻑 젖어도 여행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베네치아를 사랑하다니. 베네치아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여행자들의 거침없는 열정을 자극하는 매혹적인 도시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지인도 관광객도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는 것일까. 현지인과 관광객이 함께 행복해지는 첫 번째 길은 우선 여행자가 너무 많은 소음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대형 관광버스로 단체여행을 하더라도 특정 유명 장소에서 강한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배려하는 여행자의 기본 에티켓이다. 두 번째 길은 거대한 프랜차이즈 매장이나 다국적 기업 브랜드보다는 현지인의 자영업 매장을 애용하는 것이다.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들의 상품을 선택한다든지, 환경 친화적인 제품을 사려 깊게 선택하는 것도 ‘더 오래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익숙한 브랜드보다는 현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를 애용한다. 이렇게 조금 더 사려 깊고 현지인 친화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 발품도 팔고, 관찰도 열심히 하게 된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좋아하는 커피, 빵, 음료, 술, 생필품은 무엇인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베네치아에서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파리에서는 파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라서 먹어본다.


소중한 것을 지키는 간단한 여행법
현지인과 관광객은 물론 ‘지속 가능한 지구’라는 관점에서도 또 한 가지 중요한 활동이 바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다.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여행법은 다음과 같다. 물론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쓰레기를 비롯한 여러 흔적, 탄소발자국 등을 최대한 덜 남기는 여행은 가능하다. 

첫째, 숙소에서 사용하는 수건을 하나로 줄이는 것이다. 호텔이나 펜션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새하얀 수건들이 가지런히, 켜켜이 놓인 모습일 것이다. 커다란 전신 수건부터 손을 닦기 위한 작은 수건까지 나란히 정리된 모습을 보면 ‘이것이 여행의 묘미로구나’ 하는 유혹에 빠질 수가 있다. 하지만 언젠가 호텔용 수건을 세탁하기 위해 엄청난 물과 세제가 낭비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나는 ‘수건은 딱 한 장만 쓰자’라는 철칙을 세웠다. 침대 시트도 마찬가지다. 침대 시트를 교체하지 않더라도 매일의 청소만으로 충분히 보송보송한 침구를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둘째,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칫솔과 치약을 갖고 다니는 것이다. 내 것을 들고 가지 않으면, 도시나 숙소가 바뀔 때마다 칫솔과 치약을 사야 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쓰레기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조금 힘들더라도 항상 챙겨 다니자. 셋째, 어디서든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내가 남기고 가는 쓰레기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를 버리게 되면 그만큼 또 다른 누군가의 수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오버투어리즘이 아무리 걱정스럽다지만, 문제는 너무 많이 몰리는 관광객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현지 상인들의 꼼수도 개선해야 할 지점이다. 베네치아를 동경해 꼭 한번 와보고 싶어 하고 너무 사랑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바가지요금과 불친절로 응대하는 현지 상인들로 인해 상처 입은 여행자도 많다.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어딜 가나 비싸서 베네치아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사랑하는 베네치아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미소와 환대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결국 여행자와 현지인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원한다. 도시나 마을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나의 여행이 계속됐으면. 우리가 감상하는 도시의 아름다움이 100년 후에도, 1천 년 후에도 지켜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결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여행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이를 통해 삶을 바꾸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정여울 『감수성 수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사진·이승원 『학교의 탄생』,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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