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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너지 전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2025년 06월호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통해 지구 표면 평균 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면서 2050 탄소중립은 국제 규범이 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5℃ 상승해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파리협정에서 넘지 않기로 노력하자던 1.5℃를 처음으로 초과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탄소 예산(이산화탄소 배출허용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평균 기온 상승폭이 2℃를 넘지 않을 여지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극단적 기상이변과 같은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향한 전환 과정에서 기존 산업·경제 구조에 가해지는 전환 위험(transition risk)이라는 이중의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위기(危機)’란 단어는 곧 ‘위험’과 ‘기회’를 함께 내포한다. 이제는 위험에만 주목해 두려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와 체제 전환을 위한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중요한 질문은 ‘2050 탄소중립이 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2050 탄소중립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2050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투입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탄소중립을 하지 못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경로는 에너지 전환에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중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가 넘고, 특히 한국은 무려 87%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2%로 EU, 영국, 독일에서는 각각 47.4%, 50.8%, 62.7%로 압도적이며 미국(24.2%), 일본(24.6%), 중국(31%)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다.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 기업 수는 2014년 14개에서 2025년 4월 말 기준 426개로 늘었다. 36개 한국 기업도 참여했지만, 재생에너지 접근성과 제도 미비로 세계에서 RE100 달성이 가장 어려운 국가로 지목됐다. 실제로 2024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역사상 처음 10%를 넘었지만 여전히 OECD 최하위다. RE100 참여 기업들의 협력사에 대한 RE100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RE100 참여는 기업의 자발적 움직임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거나 원자력은 무탄소 전원이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세계 변화에 둔감하고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효율 개선과 절약으로 수요 자원을 관리하는 에너지 전환 없이는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이고 수출지향적 경제가 제대로 지속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술을 넘어 전력망 구조와 전력시장 재편을 수반하는 사회기술 체제 전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간헐성을 가진 재생에너지 특성상 전력 생산의 불확실성이 커 수요 측 유연성과 참여가 필수이며, 실시간성과 분산성을 반영하는 새로운 전력 가치 평가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 이해, 시장 가치 산정 방식, 소비자 역할, 정책 목표 등 에너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 재구성, 곧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2024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 이후 지역별 전력요금 차등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소매요금이 아니라 도매요금에 국한하려는 흐름은 문제다. 지역 간 재생에너지 한계비용 차이가 전력요금에 반영될 때 비로소 재생에너지 유인 효과가 발휘되고 산업의 녹색 재배치가 가능해진다. 영농형 태양광이나 해상풍력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전력이 다른 지역으로 송전되지 않고 지역 산업단지의 수요를 직접 충족한다면, 기후 대응과 동시에 지역균형 발전과 산업 경쟁력 제고, 에너지 안보 강화, 지역주민의 참여와 이익공유를 통한 삶의 질 제고도 실현할 수 있다. 이제 탄소중립을 향한 에너지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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