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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간고등어 기억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06월호

시절에 따라 생선의 부침도 심하다. 광어(넙치)는 양식에 성공해 대중화되기 전까지 정말로 귀한 생선이었다. 소비 증가와 바다 사정으로 자연산 횟감이 달리면서 이른바 잡어가 더 득세한 지는 이미 오래다. 낚시꾼들이 잡히면 재수 없다고 하던 쥐노래미(노래미)가 이제는 자연산이어서 비싼 생선이 됐다. 하기야 서해안에서 아이들도 잡아채던 망둥이(속담에서도 천시되는)가요즘은당최구경하기조차어렵다. 골뱅이역시원래는가자미 잡는 그물에 딸려 오던 귀찮은 존재였다. 어부들이 쓸데가 없다고 싫어해서 헐값에 팔아버리던 어물이었던 것이다. 그걸 삶고 양념해서 팔기 시작한 게 바로 깡통 골뱅이의 시초다. 이젠 수요를 대지 못해서 엄청나게 비싸고, 대부분은 수입하는 실정이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내가 군대 있던 당시에는 청어와 꽁치, 정어리, 대구가 식사 메뉴에 자주 올라와 장병들이 짜증을 낼 정도였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어종이 그때는 군대에서 ‘처리’되던 값싼 생선이었던 것이다. 이제 ‘금징어님’이 된 오징어나 잘 잡히지 않아 수입이 더 많은 낙지, 주꾸미 등은 굳이 얘기할 것도 없겠다. 꾸준히 싼 생선은 동태와 고등어 정도가 아닐까. 그나마도 동태는 국내산은 아예 없고 대신 러시아산이 싸게 들어와서 유통을 유지하고 있으니, 순수하게 국산으로 버티고 있는 건 고등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할 것이다. 물론 큰 고등어는 아주 비싸지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요리를 몇 가지 든다면 나는 망설이면서도 고등어 무조림을 말하곤 한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리어카 행상에게 가서 왕소금 뿌린 걸 건네받아 온다. 어머니는 배보다 좋다는 겨울 무를 투박하게 썰고 간장과 고춧가루, 파 듬뿍 넣어 양은 냄비에 조려냈다. 먹다 남아 식은 건 비린내가 나는데, 그래도 맛이 좋았다. 심지어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멀리, 오십여 년 전의 일이다.

고등어는 아주 빠르게 이동하는 등 푸른 생선이다. 생선 살이 붉으면 속도가 빠르고 몸이 통통하다. 다랑어, 고등어, 멸치가 그 대표 격이다. 이런 생선은 살에 핏기가 많아서 빨리 상한다. 냉장 설비가 좋은 요즘도 생산지에서 먼 지방에서는 좋은 고등어를 만나기 어렵다. 정말로 빨리 부패하기 때문이다. 안동지방은 지도상으로는 동해안과 가까워 고등어 유통권인데, 이 정도 거리도 과거에는 길이 험해 고개를 몇 개나 넘어가야 해서 부패하기 쉬웠다. 고육책으로 소금을 쳐서 유통하게 되면서 간고등어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로를 요즘 ‘간고등어길’이라고 부른다. 산지인 영덕→황장재→임동면 채거리 장터→안동으로 이어진다. 물론 요즘은 길이 새로 뚫려 다니지않는 옛길이다.

고등어는 제주와 남해안에도 많이 나고 싱싱한 것도 많다. 하지만 안동의 간고등어는 그 특유의 발효된 맛과 전통의 외피를 입어서 여전히 인기가 있다. 나도 그쪽 사람이라 고향에 가면 몇 마리 사서 오곤 한다. 제일 좋은 간고등어가 팔리는 곳은 경상북도 북부 내륙의 안동, 영주 일대이고 그만큼 값도 비싸다. 간고등어는 ‘손’이라는 단위로 파는데 크기가 조금 다른 두 마리를 겹친 것이 ‘한 손’이다. 좋은 건 2만 원 안팎이니 귀하디귀하다. 그 좋은 걸 한 점, 하얀 밥에 얹으면 정말 녹는다는 표현밖에 쓸 필설이 없다. 산불로 크게 상한 안동지방의 귀물이 문득 떠올라 기록 삼아 적었다. 어디서 안동 간고등어가 보이거든 한 점 하시는 게 돕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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