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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프리카에 제조업의 봄이 올까?
고성민 KOTRA 케냐 나이로비무역관장 2025년 06월호
오랫동안 우리는 아프리카를 가난과 내전, 황폐한 국토, 낙후된 생활 여건의 대륙으로 기억해 왔다. 수십 년간 반복된 미디어 속 이미지와 국제 원조 중심의 담론은 아프리카를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곳’, ‘리스크가 높은 곳’으로 각인시켰다. 특히 굶주린 아이, 황량한 풍경,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클로즈업 장면으로 구성된 이른바 ‘빈곤 프레임’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소비하게 만들고 동정과 시혜의 시선만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많은 기업과 정부의 투자·교역 전략 후순위로 밀어내면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웅장한 자연과 야생의 생명력,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과 문화, 공동체 중심의 사회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도 기억된다. 사파리의 대지, 색채와 리듬의 대륙,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는 우리가 쉽게 간과해 온 아프리카의 저력과 미래가 숨어 있다.



현실로 다가오는 ‘메이드 인 아프리카’···
인도 다음의 글로벌 제조업 중심지로

아프리카는 더 이상 ‘원조의 대상’만이 아니다. 14억 명에 달하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인 세계에서 가장 젊은 대륙 아프리카. 빠르게 확산되는 도시화와 디지털 전환 그리고 50여 개국이 참여한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의 출범은 이 대륙을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성장하는 신흥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만년 유망주’로 불리던 인도가 최근 글로벌 제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처럼 아프리카 역시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도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 미중 무역 갈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 풍부한 노동력 등을 바탕으로 ‘포스트 차이나’ 전략의 대표 수혜국이 됐다. 지금 세계는 다음 가능성을 찾고 있고 그 무대는 아프리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고율 관세 부과 공약이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재배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등과 같은 기존 제조업 중심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파트너 국가를 모색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정책환경 변화 속에서 아프리카는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젊은 노동력, 무관세 역내 시장, 유럽 및 중동과의 지리적 근접성이라는 다양한 장점을 갖춘 후보지로 부상하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 접근하는 방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긴급구호나 재정 원조 중심이었던 지원 방식에서 투자, 기술 이전, 인재 양성, 기후 대응, 디지털 전환 등 아프리카의 자립 기반을 뒷받침하는 미래지향적 협력 모델로 전환되고 있다. 세계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EU, OECD 국가들은 ‘무역을 위한 지원(Aid for Trade)’, ‘투자를 위한 지원(Aid to Invest)’ 기조 아래 아프리카를 소비시장이 아닌 생산 파트너로 바라보며 지속 가능한 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아프리카를 ‘공동 번영의 동반자’로 규정하며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100억 달러로 확대하고, 우리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140억 달러 규모의 수출금융을 제공할 계획을 밝혔다. 또한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에너지·인프라 투자 확대, K라이스벨트 조성, 스마트 농업 플랫폼 구축, 청년 창업 및 디지털 교육센터 지원 등 구체적인 협력 방안도 제안했다. 이는 아프리카 지원이 단순 원조가 아닌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 모델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불안정성 등 도전 과제 있으나
함께 성장할 전략적 파트너로 변모 중

글로벌 민간기업의 아프리카 투자 전략도 이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자원 개발이나 인프라 투자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제조업, 농업, 소비재, 디지털 금융, 친환경 에너지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가 단순한 소비시장이나 자원 창고가 아니라 생산과 가치 창출의 새로운 중심지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인프라 중심의 투자에서 점차 제조업, 농업, 디지털, 광물자원, 의료·보건, 스마트 시티 등으로 다변화했다. 현재 이집트, 에티오피아, 케냐 등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섬유·전자·기계 산업의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과 인도, 한국 기업들도 식품 가공, 소비재 생산, 친환경 건축자재, 스마트 농기계, 디지털 금융 솔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를 활발히 확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도시화가 확산됨에 따라 건축자재 생산 수요도 증가하고 있으며, 케냐, 우간다, 코트디부아르 등지에서는 농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냉장 물류센터, 포장 공정 시설, 식품 가공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프리카 모바일 금융의 대표 성공 사례인 케냐의 통신사 사파리콤이 만든 결제서비스시스템 엠페사(M-PESA)는 디지털 기반의 창업 생태계와 중소기업의 금융 접근성 확대를 이끌며, 기술과 금융이 경제 구조를 전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 진출에는 도전 과제도 분명 존재한다. 정치적 불안정성, 부족 간 갈등, 공급망 인프라 부족, 기술 인력 미비,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의 이슈는 투자자들에게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일반특혜관세(GSP)·「아프리카 성장과 기회법(AGOA)」 등 특혜 무역 프로그램의 만료 또는 축소 가능성은 아프리카의 수출 구조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역내 시장 통합과 자립형 제조 기반 구축은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아프리카가 더 이상 과거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아프리카를 ‘도와야 할 대륙’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협력 기조 변화, 민간 투자 다변화, 디지털 기반 산업 생태계의 확산은 모두 아프리카 제조업의 봄을 예고하는 신호다. 그 봄은 지금, 아프리카에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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