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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물장어의 꿈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5년 06월호

즐겨 보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운동선수를 위한 장어 요리 대결 장면이 나왔다. 노릇하게 구운 먹음직스러운 장어구이를 보면서 많은 시청자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장어를 떠올렸겠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장어를 즐겨 먹지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기에는 장어의 삶이 너무나 파란만장하기 때문이다.

일단 오해부터 정정하자. 우리가 먹는 장어, 즉 뱀장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에는 강 하구에서 잡았고 지금은 외국에서 연간 20톤 정도 수입하는 자연산 실뱀장어를 키워서(!) 먹는다. 그렇다. 놀랍게도 뱀장어는 광어(넙치)나 우럭(조피볼락)처럼 알부터 성체까지 키우는 ‘완전’ 양식에 성공하지 못했다.

장어를 ‘우나기’라 부르며 즐기는 일본에서 2010년과 2023년에 뱀장어 양식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다. 하지만 연구 단계에서 성공한 것일 뿐 본격적으로 상업화하기엔 역부족이다. 한국에서도 2008년부터 매년 약 10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서 뱀장어 양식에 도전하고 있다. 2016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했다”는 기사도 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혹시 헷갈리는 독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이름도 설명해야겠다. 뱀장어는 바닷장어라고도 부르는 붕장어(일본말로 ‘아나고’)나 갯장어(‘하모’)와는 다르다. 흔히 ‘곰장어’라고 부르면서 구워 먹는 먹장어와도 다르다. 넷 다 비슷하게 생겼으나 모두 다른 종이다. 결정적으로 뱀장어는 성체가 민물에서 살아서 민물장어라고도 부르지만, 나머지 셋은 바다에서만 산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독자가 있겠다. 민물에 사는 장어의 삶이 파란만장할 게 있나? 있다. 지금부터 그 놀라운 이야기를 해보겠다. 사실 민물장어는 ‘민물’ 장어가 아니다.

뱀장어 미스터리
알다시피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는 주로 바다에서 생활하다가 알을 낳기 위해서 강을 찾는다. 뱀장어는 연어와 정반대다. 주로 강에서 생활하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대로 바다를 찾는다. 우리가 뱀장어를 민물장어라고 오해하는 것도 다 자란 장어를 강에서 잡아서 먹었기 때문이다.

평균 5~7년 정도를 민물에서 생활한 뱀장어는 자손을 만들 때가 되면 가을쯤 강 하구로 내려간다. 그렇게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3~4개월 정도 바닷물에 적응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알을 낳는 산란장이 있는 먼바다로 이동한다. 여기서 첫 번째 뱀장어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강에서 서식하는 뱀장어는 도대체 어디로 가서 알을 낳을까? 그 비밀 장소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어에 진심인 나라 일본의 과학자 여럿이 그 장소를 찾고자 20년 넘게 태평양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러다 도쿄대 해양연구소가 1991년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뱀장어 치어 수백 마리를 확인했다.

이렇게 후보지가 좁혀지고 나서도 정확한 위치 확인에는 또 20년의 노력이 필요했다. 2000년대 후반이 돼서야 동북아시아 뱀장어의 산란장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북쪽 해저산맥 부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온이 25~27도로 따뜻한 4~8월, 수심 160미터의 해저 산봉우리에서 망망대해를 헤치고 모여든 뱀장어가 떼로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3천 킬로미터의 여행
한반도의 한강이나 영산강에서 뱀장어 산란장이 있는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북쪽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3천 킬로미터. 몸에 축적한 양분에만 의존하면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산란장을 찾아가는 뱀장어 떼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장엄한 자연의 신비다. 하지만 뱀장어 이야기는 아직 반도 안 끝났다. 두 번째 뱀장어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그렇게 어미, 아비의 희생을 딛고 태평양 한복판에서 태어난 뱀장어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동북아시아까지 찾아올까? 알에서 깨어난 뱀장어 새끼는 잠자리 날개 같은 납작하고 투명한 몸통을 하고 있다. 뱀장어와 다른 모양이라서 ‘댓잎뱀장어’라 불리는 몸길이 7~8센티미터의 생명체다.

이 뱀장어 새끼는 태평양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북적도 해류를 따라서 이동하다가 구로시오 해류로 옮겨서 한국, 중국, 일본이 있는 동북아시아까지 온다. 헤엄도 제대로 못 치는 뱀장어 새끼가 해류에 몸을 맡기고 반년에서 1년에 걸쳐서 3천 킬로미터 바다를 여행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이 여행은 연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다 자라서 찾아가는 연어와 달리 이 뱀장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미의 고향을 찾아 새끼 상태에서 그 머나먼 바닷길을 여행한다. 이렇게 3천 킬로미터를 여행한 새끼 뱀장어는 대륙붕과 만나는 지점에서 드디어 우리에게 익숙한 5~6센티미터의 실뱀장어로 축소 변태한다.

대륙붕에서 실뱀장어는 한국, 중국, 일본의 강 하구로 여행을 마저 하고 나서,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강 남쪽에서부터 강 오름을 시작한다. 드디어 기나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사실 새끼 뱀장어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동북아시아를 특정해서 찾아오는지, 또 그 새끼 뱀장어가 찾아간 강이 어미가 노닐었던 곳인지 등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우리가 여름철 보양식이라면서 불판 위에 올려 구워 먹는 뱀장어는 모조리 태어나서 실뱀장어가 될 때까지 3천 킬로미터의 태평양 여행을 마무리한 것들이다. 어떤가? 이쯤 되면,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장어구이를 아무 생각 없이 먹기는 어렵다.

하나만 더 언급하자. 지금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대부분 중국에서 실뱀장어를 수입해서 키운 것이다. 한국은 주요 강마다 하굿둑이 생기면서 뱀장어의 삶이 팍팍해졌다. 다 자란 뱀장어가 강에서 바다로 나가기도 어렵고,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온 실뱀장어가 강으로 올라가서 살기도 어려워졌다. 거기다 실뱀장어가 보이는 족족 싹쓸이하듯이 잡으니 남을 리가 없다.

여기서 장어구이를 먹지 말라는 얘기는 안 하겠다. 다만, 우연히 식탁에서 장어를 볼 때마다 그 장엄한 생애사를 한 번씩만 떠올려보길. 그리고 같이 먹는 사람에게 장어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참, 이 글을 읽고 나서는 분명히 지금은 세상을 뜬 가수 신해철이 1999년 발표했던 명곡 ‘민물장어의 꿈’도 다르게 들릴 테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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