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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심 공공공간이 상상력과 섬세한 기술을 만났을 때
지정우 이유에스플러스건축 대표건축가 2025년 09월호
도시의 광장이나 공원 같은 외부 공공공간은 ‘숨쉴 틈’을 제공하는 조경과 시설로 채워지곤 하지만 그것만으론 도시의 다음세대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이 공간에서 뛰놀고 서로 어울리며 성장하는 다음세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틈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풍경이다. 이는 단발적인 이벤트나 시설 설치가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시간과 관계가 공간의 의미를 완성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그 설계는 단순히 미끄럼틀이나 잔디밭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장소의 역사, 주변의 기억, 그 안에서 일어날 이야기들의 상상력이 스며들어야 한다. 일견 삭막한 도시로 느껴질 수 있는 미국 댈러스의 클라이드 워렌 공원(Klyde Warren Park)과 퍼시픽 플라자(Pacific Plaza) 그리고 하우드 공원(Harwood Park)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이들 공간은 고속도로 위, 철로 옆 혹은 방치된 구역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공원 디자인 언어로 지역의 맥락을 번역하고 그와 연관된 다음세대의 놀이풍경을 다정하게 더함으로써 시민들의 휴식과 다음세대의 놀이가 공존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미국 댈러스의 세 가지 놀이풍경···
녹지 그 이상의 의미, 공공성과 놀이의 만남


도시를 가로지르는 기존의 8차선 고속도로 위를 덮으며 조성된 클라이드 워렌 공원은 주거지역과 도심을 잇는 녹지의 다리라고 할 수 있다. 2만2천㎡ 규모의 이 공원은 야외 도서관 및 공연장, 게임 공간, 푸드 트럭과 어린이 공원을 다채롭게 갖춘 도시의 오아시스다. 이곳은 단순한 녹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주변 지역의 상업·주거 시설 개발을 촉진하고 지역민의 삶의 질, 보행 유동성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조경가 짐 버넷(Jim Burnett)이 설계한 이 공원은 다양한 방처럼 구성된 공간과 37종이 넘는 식물을 활용해 ‘발견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무대의 그늘막(캐노피)에는 반사재를 사용해 주변 잔디의 녹색을 반사시킴으로써 댈러스의 강렬한 태양에도 시각적인 시원함을 안겨주고 실제로 그늘을 제공한다. 덕분에 공연이 없을 때도 황량하지 않으며 많은 시민이 애용하고 있다.

수공간은 분수라는 전통적 유형에서 벗어나 그 안에서 실제로 물과 반응하며 놀 수 있는 워터스케이프를 조성해 조형물과 함께 활기찬 도심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그늘막을 세련된 디테일로 조성해 그 아래에서 다양한 활동과 놀이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작은 테이블 위가 아니라 도시 공원을 게임판 삼아 할 수 있는 체스, 오셀로 같은 큰 사이즈의 게임 도구들은 우리도 시급히 도입을 고려해 봐야 할 요소다.

                 

클라이드 워렌 공원 안에는 더 비밀스러운 놀이풍경이 있다. 바로 기부자이자 18년 동안 역동적으로 이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온 부부의 이름을 딴 ‘세일라와 조디 그랜트 어린이공원(Sheila and Jody Grant Children’s Park)’이다. 인공 언덕, 돌묘, 원형 봉우리 등의 요소를 활용해 놀이와 탐험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인 놀이 환경을 조성했다. 단순한 구조물 혹은 놀이터를 넘어 야외 도서관 시설, 직접 조립해 놀 수 있는 폼 구조물 등 체험 중심의 공간을 통해 공공성과 놀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주차장에서 도시민의 놀이터로 탈바꿈하다

댈러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퍼시픽 플라자는 과거 주차장이었다. 출퇴근을 위한 공간에 불과했던 이곳이 공공과 민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도심 속 작은 숲, 도시민의 삶을 바꾸는 놀이터로 변신했다.

이곳의 바닥 패턴은 전체를 감싸는 유기적인 곡선과 다양한 길을 나타내는 직선들이 교차돼 조화를 이룬다. 빨간색 파이프로 구성된 그네와 조명 복합체, 전형적이지 않은 현대적 시소, 점프하며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같은 반구체 디딤돌이 놀이 요소를 더하고 있다. 



한편에는 건축회사 HKS LINE 스튜디오에서 설계한 유려한 타원형 도넛 파빌리온이 있다. 이 파빌리온은 금속 캐노피에 모스 부호로 철도 경유지들을 정교하게 타공해 텍사스-태평양 철도의 역사를 담아냈다. 특히 타공 캐노피 아래에서는 구멍을 통해 떨어지는 아름다운 햇빛을 즐길 수 있고, 주변의 즐비한 고층 건물들에서는 타공 캐노피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부지가 가진 역사적 맥락과 기술, 인프라를 통해 시간의 흐름이 통합된 공간이 됐다.

                                              

하우드 공원은 규모로 보면 앞선 두 공원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도심형 동네 놀이터’로서의 매력이 있다. 텍사스 오스틴 기반의 텐 에이크(Ten Eyck) 조경회사에서 개념 설계를 주도했으며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역사, 문화적 맥락, 도시 경관을 고려한 디자인 틀이 마련됐다. 팬데믹 기간에 열린 비대면 회의를 통해 주민 의견 약 400건을 수집하며 사용자의 요구를 반영했다.

공원 설계자는 “단순히 현대 시설만 갖춘 녹지에 그치지 않고 이 땅이 지닌 오랜 시간의 층위를 느끼게 하고 싶다”며, 1만2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 거대한 초원과 습지였던 이곳에 서식했던 매머드를 모티브로 삼았다. 단순히 동물 조각이 아니라 내부에 다양한 공간과 장치를 품은 놀이 구조물로 설계해 아이들이 오르고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탐험할 수 있게 한다. 야간에는 내부 조명이 켜져 거대한 유적 같은 느낌을 주면서 지역의 자연사와 도시재생이 다음세대 놀이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댈러스의 세 곳을 돌아보며 도심이 ‘다정한 놀이풍경’이 되기 위해서는 예산이나 공공의 지원뿐 아니라 대범한 상상력과 섬세한 기술이 필수라는 것을 느꼈다. 클라이드 워렌 공원이 보여준 물리적 연결과 놀이, 퍼시픽 플라자가 보여준 기억, 기술 그리고 놀이의 결합, 하우드 공원이 보여준 역사적 상상력과 놀이의 연결은 모두 남다른 설계가 구현된 사례다. 이제 놀이는 더 이상 놀이터의 전유물이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다음세대에게는 도심 공공공간과 어우러진 놀이풍경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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