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혁신의 유인을 유지하면서
그 과실을 더 넓게 공유하는 균형을 찾는 데 있다.
공정성과 효율성을 대립적인 가치로 보지 않고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
성장의 성과가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AI 시대의 핵심 과제다.
최근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둘러싼 논의가 산업계와 노동계, 정치권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신기술 도입을 넘어 AI와 로보틱스를 결합해 제조, 물류, 설계 전 과정을 재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 파급력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생존과 도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고용 구조 변화와 산업 생태계 재편이 초래할 사회적 충격을 우려한다. 아틀라스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한 기업의 프로젝트를 넘어, 우리 사회가 AI 기반 산업 전환을 어떻게 감당하고 설계할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성장 속도는 앞선 기술이 아니라 ‘약한 고리’가 결정…
자동화만으로는 부족, 제도·교육·연구 모두 뒷받침돼야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먼저 거시경제 성장의 관점에서는 찰스 존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말한 ‘약한 고리(weak links)’의 통찰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AI와 로보틱스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더라도 경제 성장은 가장 부족한 요소에 의해 제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공정이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전력 인프라가 불안정하거나 핵심 부품 공급이 막히면 생산은 그 지점에서 멈춘다. 결국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가장 앞서 나간 기술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병목이다.
이는 제조 공정의 일부를 자동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자동화 설비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에너지 체계, AI를 설계하고 운영할 고급 인재,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특히 창의적 인재를 지속적으로 길러내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반복적 과업을 대체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문제를 정의하고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이동한다. 교육과 연구 시스템이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기술 투자 역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아울러 대기업의 혁신이 협력 중소기업과 지역의 산업 생태계로 확산되지 못한다면 생산성 향상은 일부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핵심 질문은 ‘얼마나 빠르게 자동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음 병목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선제적으로 해소할 것인가’다. 에너지, 인재, 규제, 공급망, 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경제 구조 속에서 한 영역의 혁신은 다른 영역의 준비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성장의 본질은 기술의 도입 속도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제약을 하나씩 제거하며 구조를 함께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성장의 토대를 다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AI와 자동화가 확산될수록 생산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 이익이 특정 기업이나 고숙련 인력, 자본 보유자에게만 집중된다면 사회 전체의 불안정성은 커질 수 있다. 기술 혁신 그 자체로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그 파급 면에서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과업은 대체되고 어떤 과업은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면서 소득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에 종사하는 중간 숙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얼마나 성장할 것인가’와 함께 ‘성장의 과실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피해를 보전하는 사후적 대응을 넘어 산업 구조의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분배 체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재교육과 전환훈련을 통해 노동자의 과업 구성을 바꾸는 정책은 기본 전제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동화가 확대되면 노동소득의 비중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자본소득의 일부를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령 로봇세나 자본세를 통한 재원 마련, 국부펀드 운용을 기반으로 기술 혁신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사회적 환원과 같은 다양한 방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노동 중심 복지 체계만으로는 구조적 전환의 충격을 충분히 흡수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분배를 강화한다고 해서 성장 동력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혁신에 대한 보상이 약화되면 기업가 정신과 위험 감수의 유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술개발과 새로운 시도에서 얻은 성과가 합리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성장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혁신의 유인을 유지하면서 그 과실을 더 넓게 공유하는 균형을 찾는 데 있다. 공정성과 효율성을 대립적인 가치로 보지 않고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 그리고 성장의 성과가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AI 시대의 핵심 과제다. 어쩌면 분배의 문제는 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약한 고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이 인간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지 않고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다. 기술 발전은 과연 가치 중립적인가? 우리는 흔히 기술을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이해하며, 그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기술을 개발할지, 그것을 어디에 먼저 적용할지,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누구에게 귀속시킬지는 모두 사회적 선택의 결과다.
특히 AI와 자동화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힘을 가진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노동을 비효용의 원천으로 설명하지만, 현실의 노동은 단순한 소득 획득 수단을 넘어 자아 실현, 사회적 인정, 공동체 소속감의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자신의 능력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질 때 느끼는 성취감, 동료와의 협업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이 과정에서 누리는 일상은 금전적 보상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 추진되는 기술 혁신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히 산업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사회, 자동화가 불안을 키우는 대신 새로운 기회를 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술 발전의 방향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경제적 제도는 결국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느냐를 반영한다. 아틀라스를 둘러싼 논쟁이 진정으로 의미를 갖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혁신의 속도만을 묻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혁신이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과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해야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삶의 여유와 안전이 함께 커지고, 창의성과 배움이 존중받으며,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이 더욱 단단히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