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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막에 부는 K뷰티 바람
정동욱 KOTRA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무역관 차장 2026년 08월호
한낮 기온이 섭씨 45도를 넘나들고 강렬한 자외선과 모래바람이 부는 아라비아반도. 이곳에 살다 보면 피부를 보호하는 건 미용을 넘어 생존의 문제임을 매일 실감하게 된다. 사막에 적응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체를 가꾸는 행위는 혹독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시간 축적돼 온 지혜에 가깝다.

사막에서 피부 미용은 생존이자 종교적·문화적 산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급증하며 새로운 부흥기 맞아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에서 미용의 역사는 이들의 국장(國章, emblem)에 새겨져 있는 대추야자와, 사막의 동반자인 낙타의 발자국을 따라 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마른 땅에서도 오롯이 살아남아 ‘생명의 나무’라 불리는 대추야자는 훌륭한 식량이기도 하지만, 그 씨앗에서 추출한 오일은 뜨거운 태양에 찢긴 피부를 달래주는 천연 연고였다. 또한 강렬한 볕에 그을린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비타민이 풍부한 낙타유를 바르고, 축복의 씨앗이라 불리는 블랙시드 오일과 유향으로 피부 장벽을 세우던 조상들의 모습은 이 땅의 오래된 ‘스킨케어’ 역사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신체를 청결하게 유지하고 좋은 향을 풍기는 것은 신에 대한 경외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로 인식됐기에 이러한 자연 치유 문화는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 2019년부터 유네스코(UNESCO)에서 대추야자와 낙타 등 사막 기후 속 전통 관습들을 연이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를 “인간과 사막 환경 간의 지속 가능한 상호작용과 지혜”라 평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흔히 중동 여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짙은 눈화장, 콜(Kohl) 메이크업 역시 화려함 속에 생존의 기능을 감추고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베일 속에서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눈을 강조하는 미의식인 동시에 안구 감염을 막고 강렬한 사막의 햇빛으로부터 시력을 보호하는 기능적 방패였다. 즉 사우디의 뷰티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치유해 온 영리한 문화적 유전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유구한 스킨케어 문화는 2016년 사우디 경제개혁 플랜 ‘비전 2030(Vision 2030)’ 정책의 시행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2017년 20%에서 2025년 34.5%로 급증하면서 새로운 부흥기를 맞았다. 근현대 사우디 여성들의 화장은 일 년에 몇 번 없는 화려한 파티나 결혼식 등 철저히 사적인 공간을 위한 것으로, 풀메이크업 중심이었다. 두껍고 매트한 파운데이션과 강렬한 색조로 얼굴을 완벽하게 덮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서만 허락된 일종의 화려한 분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매일 아침 사무실로 향하는 지금의 일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피부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급격히 현대화됐지만 사막의 기후는 변하지 않았고, 직장인들은 45도에 육박하는 열기를 뚫고 출근한 회사에서 하루 8시간 이상 에어컨 바람을 맞는다. 과거처럼 척박한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온도 차와 건조함 속에서 하루 종일 무너지지 않는 수분감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피부를 답답하게 가리는 대신 피부 자체의 건강함을 돌보는 일은 현대 사우디 여성들의 과제가 됐다.

이처럼 현대적인 필요로 재소환된 뿌리 깊은 스킨케어 문화는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30대 이하 젊은 세대의 역동성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가 생겼다. 아직 기성 세대만큼 구매력이 충분치 않은 젊은 세대는 쇼핑몰 1층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보다는 내 피부에 대한 고민을 합리적인 가격에 안전하고 영리하게 해결해 주는 ‘성분 중심의 대안’을 찾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 대비 소셜미디어 시청 시간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하는 사우디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시선이 글로벌 OTT와 SNS를 휘몰아치고 있는 K컬처에 쏠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K팝·K드라마 화면 너머로 접한 한국인의 맑고 건강한 피부톤은 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문화적 관심사가 됐다. 단순 콘텐츠 소비를 넘어 그 속의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경험하려는 개방적인 소비 성향은 자연스럽게 한국 화장품에 대한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사우디 뷰티시장의 가장 역동적 트렌드는 K뷰티…
단발성 관계 아닌 함께할 ‘K파트너’로 거듭나야

사우디의 소비자들이 K뷰티라는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하며 지갑을 열자 리야드 도심을 지탱하는 거대 리테일산업도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약국 체인이나 보수적인 대형 쇼핑몰 중심이던 사우디 뷰티 유통망은 이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편집숍과 디지털 플랫폼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현지 대형 뷰티 전문점인 ‘화이츠(Whites)’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형 약국 체인 ‘알다와(Al-Dawaa)’와 같은 바이어들이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강화하고 한국 브랜드 소싱에 공들이고 있는 모습은 시장의 대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필자는 최근 정부가 ‘K-뷰티 사우디 진출 지원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현지 화장품 유통 기업 30여 개사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사우디 바이어들에게는 ‘얼마나 싼가’가 우선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의 최신 유행 제품이 무엇인지, 어떤 전략적 셀링 포인트가 있는지, 사우디의 ‘기후적 특성’에 얼마나 견고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드넓은 사우디시장을 함께 공략할 ‘K파트너’를 찾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단발성 관계가 아니라 제품을 가장 잘 아는 제조사가 현지 마케팅 전략 수립에도 참여하고,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통해 상호 이익을 키워나가길 원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사우디 유통업자들이 입을 모아 인정했던 점 역시 K뷰티가 현재 사우디 뷰티시장의 가장 역동적인 트렌드라는 사실이었다. 과거 일부 마니아층의 전유물이나 신기한 유행으로 치부되던 한국의 스킨케어 제품들은 이제 현지 최대 화장품 이커머스 플랫폼인 ‘나이스원(Niceone)’의 베스트셀러 상단을 차지하고, 리야드 도심의 주요 오프라인 뷰티 매대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규모 있는 화장품 전문점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는 온라인 자사몰에 들어가 보면 ‘K뷰티’ 카테고리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K컬처의 인기와 함께 한국 화장품이 가진 고품질 성분 중심의 진정성과 하이브리드형 혁신성이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고민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소비자가 먼저 움직이며 기존 시장의 판도를 허물고 새로운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비즈니스 신호는 없다. 사우디인들이 가진 뿌리 깊은 문화적·환경적 맥락을 이해하고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낸 틈새를 정교하게 파고들 수 있다면 사우디는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의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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