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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에서 ‘화합의 유럽’ 이끈 EU···브렉시트가 ‘해체’ 불붙여
이종원 한국유럽학회 이사장 2016년 08월호


EU는 정부 간 협상주의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이끌어내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유럽건설의 비전을 구체화했다. 또 신규 회원국에 대한 가입조건으로 엄격한 민주화 달성 의무를 제시함으로 유럽국들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었다.

 

1950년 5월 9일 ECSC(유럽석탄철강체) 설립을 위한 슈망선언이 선포된 지 66년 만에 EU(유럽연합)호는 브렉시트라는 초대형 태풍을 만나 난파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국내외 언론의 보도와 같이 영국은 국민투표를 실시해 52%의 찬성으로 EU 탈퇴를 결정한 바 있다. 아직 절차상 문제가 남아 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진행된다면, 영국은 EU를 탈퇴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의 말대로 EU 탈퇴의 도미노가 일어날지, 아니면 라가르드 IMF 총재의 말대로 본격적인 EU 개혁의 시발점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1952년 ECSC 설립에 이어 1958년에 EEC(유럽경제공동체)가 창설된 이후 회원국은 원가입 6개국에서 9개국으로 확대돼 계속해서 EU 회원국은 28개국까지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탈퇴한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EU 창설 이래 영국이 탈퇴를 결정하는 첫 사례가 돼 세계경제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유럽을 평화와 화해의 대륙으로 탈바꿈시킨 EU

먼저 최근의 브렉시트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유럽통합의 역사를 고찰해야 한다. 제국주의와 경제적 민족주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냈고 유럽대륙은 그 전쟁의 무대가 됐다. 제2차 대전 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럽은 더 이상 세계의 주역이 아니며, 그 자리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국에 의해 대체됐고 자신들은 힘없는 약소국 집단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에 따라 전후 유럽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유럽에 전쟁의 비극이 없어야 되겠으며, 보다 자유롭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단합과 통합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프랑스에 의해 모네플랜(제2차 대전 후 피폐한 프랑스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 경제학자 모네가 창설한 산업 부흥 4개년 계획)이 제안됐으며 패전국인 독일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참가해 6개국의 ECSC가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의 제안에 의해 1952년 출범했으나, 영국은 참여를 거절했다.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 ECC가 결성되는 결실을 맺었으나 역시 영국 없이 6개국에 의해 출범했다. 본래 영국은 주권 침해를 우려해 유럽경제공동체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으나 1960년 EFTA(유럽자유무역연합)가 설립되자, 전자의 성공을 직시한 영국은 1973년 오늘날 EU의 전신인 EC(유럽공동체)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EC는 EU의 창설 근거가 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발표했다. 기존 EC에 외교안보, 내무사법을 포괄하는 정치조직으로 발전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EC는 마스트리히트조약에 근거한 EU를 1993년 출범시켰다. 기존의 단순한 경제공동체에서 각 회원국의 정치, 경제, 법률에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외교 공동체로 발전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EU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과 반목의 분위기가 지배했던 유럽을 평화와 화해의 대륙으로 탈바꿈시킨 공로가 컸다. 정부 간 협상주의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를 이끌어내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유럽건설의 비전을 구체화했다. 이러한 공로로 노벨위원회는 EU를 201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EU와 유럽대륙에서의 평화와 화합, 민주주의, 인권증진에 기여한 바 크다.’고 밝혔다. 특히 1980년대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이 회원국에 합류하면서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점도 높이 평가됐다. 이후 EU는 신규 회원국에 대한 가입조건으로 엄격한 민주화 달성 의무를 제시함으로써 유럽국들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회원국 문호를 동유럽 국가로까지 확대하면서 동서 유럽 간 대립이 사라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2013년 크로아티아까지 EU에 합류함으로써 내전의 상처가 남은 발칸반도의 화해와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아졌다.

 

‘Great Britain’에서 ‘Little Britain’으로 전락할 수도

브렉시트로 제기된 EU의 위기를 유럽국가들은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해체의 길을 갈 것인가? 영국정치인들의 오판이 불러 온 사태이지만, 그 결과 영국에서는 탈퇴파 잔류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동반사퇴가 발생했다. 따라서 재투표를 주도하거나 의회에서 투표결과를 번복할 지도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잔류를 희망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문제가 남아 자칫 ‘Great Britain’이 ‘Little Britain’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영국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즉, 국가주권 우선주의 국가인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탈퇴 도미노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국가의 동조 여부는 EU를 탈퇴한 영국의 성패와 직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잘된다면 다른 국가들이 따라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두 남을 것이다. 


EU의 위기는 주기적으로 오는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의 세계경제 침체기 때에는 더욱 적극적인 통합, 즉 EMS(유럽통화제도)를 통한 환율안정시스템 및 단일시장프로그램으로 1990년대의 재도약기를 만들었다. 2002년에는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더 나아가 단일통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들로르 집행위원장,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독일 총리 등과 같은 큰 지도자들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답은 통합이다. 통합을 멈추면 자전거는 서게 된다.


영국의 석학 앤서니 기든스는 저서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지금보다 더 강력한 통합유럽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통합유럽을 위한 과정에는 여러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그가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는 불안정한 유로시스템이다. 독일과 그리스가 단일통화를 사용하면 후자의 경상수지 적자는 뻔한 결과이므로 재정이전이 없으면 동 시스템은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 때문에 다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제안하는 대로 재정통합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문제는 민주주의 결핍과 리더십 부족이다. EU에는 유럽의회, 이사회, 집행위원회 등 공식적인 업무조직과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등으로 구성된 비공식 조직이 있는데, 이들 조직에서는 모든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기 어렵고 결국 몇몇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EU 회원국 국민들의 애국심이나 공동 시민정신을 요구하기 어렵다. EU는 개별 국가주권을 공동주권(Common Sovereignty)의 개념으로 바꾸는 사회과학 실험을 하고 있지만, 전통 주권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연합이라는 체제는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흩어진 유럽의 개별국가는 약하고 유럽의 존재감은 작아지므로 결국 강한 유럽을 위해서는 연방제와 유사한 형태의 유럽연방주권이 그 대안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아무리 강력한 브렉시트라도 유럽통합이라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하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번스타인의 말대로 ‘불협화음 다음의 아름다운 화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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