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은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확산에 제동을 걸었고, 월가 시위부터 최근 브렉시트까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신 및 불만 표출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이점이 과잉 포장됐다면 현재 주요국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모두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인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 또한 오판일 것이다.
2016년 6월 24일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는 예상외의 찬성 우세였다. 국민투표 결과 발표 직후 요동을 치던 세계 금융시장은 얼마가지 않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최근 S&P500 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브렉시트의 후폭풍은 다소 가라앉은 듯하다. 그러나 브렉시트는 한낮의 소동이 아니며 그 바탕에 깔려있는 기조는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이미 다수의 국가에서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류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에서 표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 및 반감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있으며, 나아가 반(反)신자유주의의 정서가 더욱 확산될 경우 글로벌 경제가 새로운 고립주의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들을 일률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해석 또는 포장(framing)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조금 더 엄밀하고 냉정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진단이 올발라야만 효과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로 부각된 국제사회의 갈등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영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브렉시트의 찬성(Leave)과 반대(Stay) 진영은 직종, 소득, 연령 및 교육 계층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렸으며, 국민투표의 격차는 3.8%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왜 영국 국민 간의 시각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타난 것인가? 그간 영국은 EU 회원국으로서 많은 경제적 혜택을 얻었고, 런던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으로 부상했다. 반면, EU 단일시장(Single Market)에 대한 접근에는 대가가 따르며, 특히 EU의 원칙인 ‘물건, 자본, 서비스,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인해 영국은 지난 10년간 매년 20만명 가량의 이주민들을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EU 통합에 따라 커진 경제적 파이와 수반되는 부담이 영국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고, 수혜 계층과 소외 계층 간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된다는 불만이 쌓였다. 결국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이러한 소외 계층의 쌓여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문제는 영국에서 드러난 현상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근 세계 각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은 경기 침체, 실업률 증가, 이중노동시장 확대, 부의 양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 세력들은 이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을 기회 삼아 자국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및 그리스에서는 EU 가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게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중동 난민 문제를 둘러싼 반이민자 정서는 유럽 다수의 국가에서 극우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올해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도 보호무역주의 및 반이민자 정책을 내세운 트럼프(Trump) 후보가 예상외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신자유주의 정서 확산돼
신자유주의 이념은 자유로운 시장원리의 작동과 정부 역할·간섭의 최소화를 표방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4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제적으로 진행돼온 탈규제(deregulation), 금융화(financialization) 및 세계화(globalization)의 근간이었다. 1970년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에 들어서 미국의 레이건(Reagan)과 영국의 대처(Thatcher) 정권 아래 강하게 추진됐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견제 없이, 때로는 거칠게 퍼져나갔으며, 그 전파 수단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이 동원되기도 했다. 무역을 중심으로 단기간 내에 경제적 기적을 일궈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시장개방, 민영화 등을 IMF로부터 강하게 ‘권고’ 받았던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의 확산 과정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은 신자유주의의 무분별한 확산에 제동을 걸었고, 월가 시위(Occupy Wall Street)부터 최근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신 및 불만 표출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이제까지 신자유주의를 주도해온 미국과 영국이 최근 신자유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감을 가장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여기에 최근 IMF가 발간한 자료인 「Neoliberalism: Oversold?」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탈규제 및 금융화의 혜택이 그동안 과장되고 일부 신흥국에는 상황에 맞지 않게 강요됐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상황 불리하다고 글로벌 규칙을 임의적으로 바꿔선 안돼
그동안 신자유주의의 이점이 과잉 포장됐다면 현재 주요국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모두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인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 또한 오판일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돼왔던 지난 40여 년간에는 기술의 발전, 인구고령화, 지정학적 재구성 등 다양한 환경변화가 이뤄졌고, 이러한 현상들은 궤를 같이하고 있으나 이들의 상관관계(correlation)를 인과관계(causation)로 규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또한 보호무역주의 및 고립주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노동생산성 증가율 둔화, 고용 없는 성장, 복지비용 증대 등의 문제를 얼마나 방지할 수 있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 유럽의 이민자를 둘러싼 논쟁은 경제적 요인과 더불어 종교, 인종 및 이념적 갈등이 섞여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와 연계시켜 보호무역주의와 신고립주의로 대응한다면 문제의 해결이나 갈등의 해소는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규칙은 공평하고,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적용돼야 한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특정 국가들이 중도에 힘의 논리를 남용해서 규칙을 임의적으로 바꾼다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그 국가들은 정당성을 잃고 정치적 리더십을 실추하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