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탈퇴를 의미하는 ‘넥시트’ 및 ‘프렉시트’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핀란드와 폴란드 그리고 덴마크의 탈퇴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70년 가까이 지속해온 유럽의 통합 노력이 브렉시트 하나로 수포로 돌아갈 일은 만무하다. 현대 정치의 출발 이래 유럽국가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Brexit)가 최종 확정됐다. 지난 6월 24일, 영국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투표에서 투표 참가자의 51.89%가 EU 탈퇴를 찬성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영국 스스로 ‘영국 우선주의(Britain First)’를 앞세우며 유럽통합체로부터 이탈을 선택한 것은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의 과정을 지속해 온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20일 만인 7월 13일 새 수상으로 테레사 메이(Theresa May)가 취임함과 동시에 영국은 이제 EU로부터 ‘질서 있는 퇴각’을 관리해 나갈 지도부를 구축했다. 예상보다 2개월 빨리 새 수상이 결정됨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 협상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흥미로운 일은 브렉시트 결정 이후 가장 당혹해하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라는 점이다. 투표 이후 탈퇴를 주도한 세력들이 제시했던 공약 내용은 신빙성이 낮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투표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투표하자는 서명운동에는 수백만명이 참여했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지역은 노골적으로 잉글랜드와의 분리 독립을 한층 강화하고 있고, 선거 분석 결과 저소득층과 노년층이 브렉시트를 주도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지역과 소득 및 세대 차이에 따른 영국 사회의 분열 양상은 더욱 첨예화되는 모양새다.
EU는 국민국가와 초국가 단위가 병존하는 혼성체
유럽은 과거를 반성하면서 색다른 실험을 감행해 왔다. 근대 정치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폭력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유럽의 부활’이라는 야심 찬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는 통합 유럽 구축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유럽은 국민국가와 초국가 단위가 병존하는 혼성체(hybrid)로 운용되고 있다. 28개국이 모인 EU는 약 5억명의 인구와 전 세계 GNP의 약 25% 그리고 전 세계 상품 수출의 약 40%를 담당하는 초국가적인 조직체이다. EU는 경제적으로는 세계 제1의 단일시장을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강한 응집력을 과시하여 국제무대에서 유력 행위 주체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간 공동보조를 맞춰왔던 영국이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실제로 브렉시트 이후 EU로부터 연쇄적으로 탈퇴할 조짐이 감지되기도 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탈퇴를 의미하는 ‘넥시트(Nexit)’ 및 ‘프렉시트(Frexit)’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연이어 핀란드와 폴란드 그리고 덴마크의 탈퇴가 점쳐지기도 했다. EU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행한 과거가 재현되는 것을 막아내고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70년 가까이 지속해온 통합 노력이 브렉시트 하나로 수포로 돌아갈 일은 만무하다. 유럽 통합의 목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처럼 국민국가가 중심이었던 과거의 역사가 평화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구획된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 경제 경쟁력의 면에서 불리하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개별 국가별로 재구성되는 19세기로의 회귀는 유럽에게 일종의 자해행위이다. 현대 정치의 출발 이래로 유럽국가들은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 및 프랑스와 함께 통합 유럽의 주요국인 영국이 이탈함에 따라 EU의 위상이 일정 정도 추락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EU는 이러한 흐름에 순응적인 자세만으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EU는 이미 브렉시트 이후 새로 조성된 조건 속에서 함께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서고 있다. 브렉시트 직후 통합 원년 회원국 외교부장관들은 영국에 EU 탈퇴 절차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면서 통합의 중심을 새로이 다잡겠다는 공동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문제점을 보완하고 보다 나은 방안을 모색할 태세다. 새로운 개혁 방안은 올바른 진단에 의해 채워진다. 국가성과 초국가성이 결합된 EU의 운영과정에는 많은 모순점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회원국 간에는 여전히 이해 상충이 빈번하고, 제도 및 정책 간의 불일치도 눈에 띈다. 정치학자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의 저서 「덫에 걸린 유럽」이나 국제관계학자 얀 지엘론카(Jan Zielonka)의 저서 「유럽연합의 종말」속에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함축돼 있다. 개혁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데 있어 앞으로 EU가 당면하게 될 문제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긴축재정 갈등·불균형 발전·극우주의 해결이 관건
우선 EU 경제정책 노선 선택과 관련한 문제이다. 주지하듯이 통화동맹을 추진해온 EU 경제정책의 기조는 긴축정책이다. 물가 인상률을 낮추고, 균형 및 흑자예산을 추구하며, 국가의 누적채무액도 절감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경제대국 독일이 이러한 정책을 선도해 나가고 있는데 추가적인 채무가 없는 정부 예산정책, 즉 ‘슈바르쯔 눌(die schwarze Null)’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이 정책의 지속 여부를 둘러싸고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민련(기독교민주연합)과 사민당(사회민주당) 간에 다툼이 시작됐다. 여기에 프랑스 올랑드(Hollande) 대통령과 이탈리아 렌치(Matteo Renzi) 총리는 사민당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가혹한 긴축 처방이 그간 EU에 대한 피로감을 가중시켰다고 평가하고, 회원국들에 대해 재정정책의 자율성을 강화시켜주자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흐름과 관련된다. EU 내에서 정파 간에 EU 경제정책의 향방을 둘러싼 균열이 고조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둘째는 EU 회원국 간의 불균형 발전의 해소 문제이다. 유럽 통합은 기본적으로 각 영역에서의 동질성 회복과 확산 정신에 기초해 있다. 여기에 맞춰 지금까지 EU는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와 유로존 경제 위기를 논하는 데 있어 EU 회원국 간의 불균형 발전이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특히 유로존 내에서 독일의 경제적 독주가 문제되고 있어 ‘독일의 헤게모니’라는 표현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남북 및 동서 유럽 간 불균형 발전이 지속되고 경쟁력 격차가 좁혀지지 않은 한 통합 질서를 심화 및 지속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브렉시트 이후 EU에 남겨진 주요 과제이다.
세 번째 문제는 최근 유럽 전역에서 득세하고 있는 극우주의 정치세력의 문제이다. 극우주의의 득세는 북유럽에서 남유럽 전역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다. 대량의 난민 유입과 이슬람 조직에 의한 테러 행위에 대한 반작용과 아울러 광신적인 애국주의에 기초한 극우주의는 통합 유럽의 흐름에 커다란 장애물임이 분명하다. ‘민족주의의 폐해’를 경험한 유럽이 수십년간에 걸쳐 추진해온 초국가적인 지역통합체 구축 노력과는 결을 달리하는 극우주의의 지지세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의 문제 역시 브렉시트 이후 EU의 주요 과제인 것이다. 높아지는 이민자 반대 목소리와 국경통제 권한을 개별 국가에 반환하라는 요구에 EU가 해결책을 내놓는 일이 시급하다. 이러한 주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브렉시트 이후의 EU의 개혁방안과 그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