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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앞선 경제통합···마음의 벽 여전히 높아
최규민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 2017년 07월호




1960년대 동남아시아는 전쟁과 갈등, 혼란의 열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 건국 대통령 수카르노가 쫓겨났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보르네오 섬 북부 영토를 두고 전쟁을 벌였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영토 분쟁으로 외교 관계를 2년간 단절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의 일부였던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축출했다. 이웃 간 반목과 갈등을 줄이려면 대화와 협력의 장이 절실했다. 이미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이 결성한 동남아연합체(ASA)라는 느슨한 모임이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1967년 8월 8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5개국 외교장관이 태국 방콕의 외교부 청사에 모여 협정서에 서명을 했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아세안은 브루나이(1984년), 베트남(1995년), 라오스·미얀마(1997년), 캄보디아(1999년)를 차례로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10개국 체제를 갖췄다.


올해로 창설 반세기를 맞은 아세안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다. 2015년 현재 10개국 인구를 합치면 6억2,900만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 국내총생산(GDP)으로는 세계 6위, 상품무역 규모로는 4위에 해당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이 지역의 경제 규모는 66% 불어났다. 특히 젊은 인구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큰 것이 최대 강점이어서 2015년 한 해에만 1,200억달러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몰려들었다. 같은 해 한국이 유치한 투자액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한국 속담은 아세안의 상황과 잘 어울린다. 통합이 매우 어설프고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석탄공동체(ESCS)에서 출발해 단일 통화, 단일 시장을 구축한 유럽연합(EU)과 대조적이다.


역내 사교클럽에 가까웠던 아세안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통합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라고 불리는 거대 신흥국들이 부상하면서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이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가 된 것도 자극제가 됐다. 하지만 아세안이 ‘단일 생산기지, 단일 시장 기반 구축’이라는 모토로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출범시킨 건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2015년 말이 돼서다. 올해로 출범 3년째를 맞은 AEC 역시 아직까지는 실체보다는 선언적 의미에 가깝다. 상품·서비스·노동시장 통합 중 아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명목상으로는 역내 상품 관세 철폐율이 96%에 이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비관세 장벽이 여전히 잔뜩 남아 있다.


올해 초에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간에 자존심을 건 ‘도로 통행료 싸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발 차량에 통행료를 신설하자 말레이시아가 발끈해 보복성 통행료 신설로 맞섰다. 동남아 국가들 간에 아직도 마음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사소하면서도 상징적인 일화다.


아세안의 경제통합이 말만 앞선 채 실행이 잘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회원국 간 정치·경제·종교·문화적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EU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갖춘 국가들만 회원국 자격이 있지만, 아세안에는 민주주의·권위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들이 뒤섞여 있다. 1인당 소득이 5만달러가 넘는 싱가포르부터 1,200달러밖에 안 되는 캄보디아까지 경제적 격차도 심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세안이 느리지만 확실히 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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