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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처음부터 메이커였다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2018년 02월호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불렀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는 존재라는 말이다. 도구를 쓴다는 것은 뭔가 만든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 서 우리는 처음부터 메이커(maker)다. 어떤 것을 만드는 사람.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다시 우리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 새로울 것도 없는 메이커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정확히는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의 메이커가.여기서 메이커는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2005년 IT 출판 사 오라일리 미디어의 공동 창업자 데일 도허티가 『메이크(Make:)』 라는 잡지를 펴내며 한 말로, 메이커 운동은 ‘만드는 법을 함께 공유하고, 협력하며 함께 발전시키는 모든 흐름’이라 얘기할 수 있다. 웹 2.0의 ‘개방, 참여, 공유’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DIY(Do-It- Yourself) 운동 2.0이라 봐도 좋겠다. 다만 DIY 운동이 생활소품과 가구를 주로 다뤘다면, 메이커 운동은 취미생활부터 창업에 이르기 까지 훨씬 더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

메이커 운동은 왜 시작됐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할 수 있으니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제품 제작에 필요한 도면이나 아이디어, 노하우를 공유하기 쉬워졌다.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밀링 머신이나 레이저 절단기 같은 다양한 산업기계 가격이 저렴해지고 다루기도 쉬워졌다. 거기에 더해 크라우드 펀딩 같은 공유경 제가 등장해 제작에 필요한 공간이나 자금을 얻거나 소량생산을 하기가 쉬워졌다.

쿠바를 처음 가본 사람은 놀란다. 혹독한 경제제재 때문이긴 하지만, 쿠바 기술자들은 서로 다른 자동차 부품을 조합해 굴러가게 만들고 가스버너를 이용해 오토바이를 고친다. 쿠바까지 갈 것도 없다. 예전에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치약이 얼마나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지 안다. 애당초 우리는 없으면 만드는 사람이었다. 한국 최초 국산 자동차 ‘시발’ 역시 한국 전쟁 이후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를 주워다 해체한 뒤 조립해 만든 차량 아니던가.

아이러니하지만 넘치는 콘텐츠 속에 창의력은 오히려 짓눌려 있었다. 온전히 소비자로만 머물라는 보이지 않는 강요를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메이커 운동은 좀 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저항일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DIY 운동의 원조 격인 미술 공예운동 역시 산업혁명 시대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에 맞서 생활 속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수공예 생산 방식으로 복귀하자는 운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기반 산업이 떠오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때에 메이커를 말하다니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이런 시대이기에 더욱 메이커가 필요하다. 사람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새롭게 찾아내야 한다. 지금도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메이커들이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건 앞으로 우리 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밌다. 그리고 필자는 믿는다. 사람이 손맛을 포기할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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