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는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적인 ICT 기업들이 모여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감상하던 ‘메이커 무브먼트(활동)’를 소개하는 숱한 영상 속 배경도 대부분 샌프란시스코였다. 지난해 7월, 우연한 기회로 이곳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둘러봤다.
가장 먼저 샌프란시스코의 과학관으로 잘 알려진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을 찾았다. 모든 전시물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2박 3일은 걸릴 규모였다. 하지만 그중 가장 주목한 공간은 과학관 전시물을 만드는 곳인 ‘메이커 스페이스’였다. 이곳은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뻥 뚫린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계자는 과학관 전시관 내에 새로운 체험기구나 전시물을 설치할 때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설치한 다음 관람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고 설명했다. 주로 청소년 관람객이 많은데 학생들이 메이커(기구 제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받아들이는지, 어느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는지, 어려운 과학 또는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 공간 앞에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전시물이 만들어지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흔히 보던 메이커 스페이스의 모습이다. 관람객이 방문을 하는 시간에도 메이커들은 다음에 선보일 새 기구를 만들고 있었다. 대학 내 공간은 어떨까. UC버클리대 안에 마련된 메이커 스페이스를 다녀왔다. 등록되지 않은 외부인에게 열린 공간은 아니었지만, 지인을 통해 만난 UC버클리대 기계공학과 임다현 박사과정 학생 과 함께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임다현 학생은 보편화된 미국 메이커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을 “‘만들고 싶은 무언가’가 떠올랐을 때 어디로 달려가면 되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찾은 공간에는 전공이 서로 다른 학생은 물론 근처의 초등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 주변에 살고 있는 아마추어 메이커, 실제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프로 메이커까지 다양했다. 이 밖에도 도시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메이커 스페이스를 둘러 봤다. 가장 부러웠던 점은 마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을 때 원하는 시간에 영화관을 방문하는 것처럼 만들고 싶은 제품이 있을 때 가까운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는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미국 메이커 스페이스를 둘러 보니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1)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2) 밤 12시까지 이용 가능한 3)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나 해결 가능한 멘토였다.
메이커의 본거지인 이곳에서 만난 어떤 메이커는 “‘진짜’ 메이커 스페이스는 적당히 더러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작품(또는 제품)을 만들다 보면 사용했던 온갖 기구가 주변에 널브러져 있고, 곳곳에 순간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적힌 메모가 널려 있으며 책상 주변에는 만들다 실패한 시제품들이 줄지어 있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 메이커 스페이스는 대부분 지나치게 깨끗한 곳이 많다. 취재차 들른 몇몇 공간에서는 고가의 장비가 고장 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관리자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메이커를 키워내고 싶다면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오래 불이 켜진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