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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는 종합적인 활동…쓸데없는 짓, 실패에서 새로운 것 나와”
김성수 무규칙이종결합공작터 용도변경 운영자 2018년 02월호



공구와 재료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뒤섞여 몇 평 규모라고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곳,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쓰레기 더미라고 하기 딱 좋을 곳에서 요즘 전기자동차 제작에 한창이라는 ‘무규칙이종결합공 작터 용도변경’(이하 용도변경)의 김성수 운영자를 만났다. 그 이름부터 심상찮은 용도변경은 2011년 시작돼 현재 남아 있는 국내 메이커 스페이스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넓은 책상에는 낯선 모양의 기계들이 빼곡하다. 기계치이자 곰손인 기자에게는 “원하는 모양의 과자를 만드는 3D프린터”, “팬케이크를 굽는 3D프린터”라는 설명이 외계어처럼 들린다. 이런 사람도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메이커는 좋아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 시행착오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자도 메이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메이커가 된 계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다. 「빈깡통공작」, 「즐거운 공작」, 「007제작집」 같은 책을 아직도 갖고 있다. 2007년 말 하던 사업이 잘 안 돼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그때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만들기에 손이 갔다. 그러면서 외국의 해커 스페이스(Hacker Space)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도 그렇게 모여서 만들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용도변경을 시작했다.


어떤 공간을 지향하면서 만들었나.
소설가 박민규가 스스로를 ‘무규칙 이종결합 소설가’라고 부르는데 그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디자인기업 아이디오(IDEO)를 설립한 켈리 형제가 쓴 책에서 이종결합, 이종교배의 중요성에 대해 읽고 이거다 싶었다. 무규칙이라는 말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공작소라고 붙일까 하다가 공작소는 그냥 내가 혼자서 하는 걸 뜻하니 장터 이런 개념에서 공작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이 거창해졌는데 그냥 메이커 스페이스다. 분야에 상관없이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같이 만들기도 하고 따로 만들더라도 교류하고 자랑할 대 상이라도 있어야 하니까(웃음).


그동안 만든 게 굉장히 많겠다.
처음 만든 건 애완동물하고 놀아주는 로봇이었다. 바퀴가 달린 형태로 동물의 움직임을 감지해 굴러가게 했다. 의뢰를 받아 만든 것 중엔 유조선에 싣고 다니다가 난파됐을 때 바다에 넣으면 자동으로 펜스를 쳐 원유가 퍼지지 않게 해주는 로봇이 있었다. 어린이 놀이 부스를 의뢰받았을 땐 비눗방울 권총에 센서를 달아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나오게끔 하는 것도 만들었다. 그 밖에도 많이 있다.


메이커들과 같이한 프로젝트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지난봄 메이커 운동회를 열었다. 직접 만든 활을 쏘기도 하고, 얼마나 적은 횟수로 망치질을 해 나무토막에 대못을 박는지 겨루는 장치도 만들어와 대결했다. 나는 동작감지센서를 달고, 그걸 피해 복도 끝까지 가는 게임을 고안했다. 광주에서 코끼리협동조합이라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친구들, 메이커계에서 유명한 강석봉 메이커 등을 비롯해 전국에서 참가했다. 여름엔 골판지로 배를 만들어 대전 갑천을 건너는 대회를 열었다. 굉장히 재밌었지만 나만 못 건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웃음).


우리나라는 뭔가를 만들면 “왜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니?”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단지 메이커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들은 머리 쓰는 일은 높이치고 손 쓰는 일은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새로운 걸 만들려면 그 둘이 합쳐져야 한다. 국책·민간의 연구소들을 보니 안에서는 머리만 쓰고 제작은 외주를 주더라. 그러면 뭐가 잘못 돼도 원인 파악이 안 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기 어렵다. 부품이나 재료를 만지작거리다가 없던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던 아이디어도 개선되는 건데 그걸 온전히 밖에 맡겨버리니 굉장히 큰 부분을 잃는 거다.


아무래도 만들다 보면 시행착오를 거칠 텐데 어떤가.
당연히 한 번에는 안 된다. 고쳐보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보기도 하는 게 당연한 과정인데, 보통은 그걸 실패라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큼 실패에 민감한 나라가 또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에서 만든 것들을 가져와 분해하고 본떠서 똑같이 만들었다. 잘 베끼기만 하면 제대로 돌아갔다. 실패를 거듭해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실패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쉽게 포기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따라가기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 앞서 가려면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고 이때 메이커의 문화, 좀 아마추어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는 메이커의 방식이 참 중요하다.


엄청나게 기술이 발달해 있고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만들기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만들기는 종합적인 활동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부품을 사든지 직접 깎든지 조달하고, 조립을 하고, 또 그걸 사용해보고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해 많은 것을 계산해서 다시 고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기계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설, 영화 같은 소프트웨어 쪽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교육도 과목별로 쪼개고 문과, 이과로 나눠서 하는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만들기처럼 프로젝트에 베이스를 두고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메이커 문화를 정착시키고 메이커 스페이스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생겨나는데 제대로 운영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장비도 사용할 줄 알아야 하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들을 키워내는 교육기관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녁 6시면 문 닫는 곳들을 만들어놓고 메이커 스페이스가 늘어났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잘 운영되고 있는 곳, 해본 사람들을 지원하면 어떨까. 지원을 하면서 재료비는 되고 장비나 인건비는 안 되고, 이런 식으로 선을 긋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메이커는 발명가와는 다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남이 만들었던 것이어도 되고, 대단한 게 아니어도 되고, 필요한 게 아니어도 된다. 재미가 있으면 되고, 무엇이든 만들어도 괜찮다. 이런 문화를 기본 으로 깔아놓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재미를 갖고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만들어보는 경험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기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예술적 감성이 있다면 미디어아트 등 예술활동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양은주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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