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존재한다. 여름 밤낚시, 캔맥주를 마시며 추리소설 읽기, 지리산 종주, 해질 무렵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 이른 새벽 수영, 베란다에 꾸며놓은 작은 정원…. 소소하지만 틀림없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어떤 것. 수많은 현대인들이 이 ‘소확행’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소확행은 종종 눈앞에 있다 아스라이 사라진다. 손만 살짝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데도 손에 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다. 야근과 회식이 일상이 된 직장인들은 삶의 소소한 행복이 눈앞에서 멀어지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는 좌절감을 오랫동안 맛봤다. 과도한 업무는 유능함과 열정으로 포장됐고, ‘일’은 ‘삶 그 자체’로 치환됐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워라밸)’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다. 쉬지 않고 일에 매진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던 개발 시대 논리가 힘을 잃고,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소설 「파랑새」의 교훈을 일상에서 실감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워라밸은 삶의 만족도를 가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6월 4일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여론조사’를 보면 워라밸이 높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갔다. 워라밸이 8점 이상(10점 척도)이라고 응답한 국민들의 삶의 질 만족도는 7.7점이었다. 이는 전체 응답자 평균(6.4점)을 크게 웃도는 점수다. 워라밸이 2점 이하라는 응답자의 만족도(2.8점)와 비교하면 무려 3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워라밸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게 있는데, 바로 ‘여가’다. 바쁜 일상 속 자투리 시간 정도로 하찮게 여겨졌던 ‘여가’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가치가 상승했다. 문체부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인식이 확인된다. 응답자들은 여가시간이 생기면 자기계발·취미·스포츠 등을 위해(38.9%), 자신의 휴식을 위해(24.4%), 가족을 위해(23.2%) 쓰고 싶다고 했다. 여가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바뀌었으나 여가문화는 아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가 2016년 발표한 ‘국민여가활동조사’는 우리의 여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TV 시청(46.4%), 인터넷 검색(14.4%), 게임(4.9%) 등 국민 상당수가 미디어에 의존해 여가시간을 보내는 소극적·수동적 양상을 보였다. 정부는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을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여가에 드는 높은 비용, 어떻게 즐겨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정부는 국민들이 여가를 제대로,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2015년 제정된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에 따라 여가활동의 기반을 국가가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여가활동에까지 나서야 하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헌법 제 10조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 기회가 왔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과 ‘주말’을 돌려받고 있다. 정부는 각종 제도와 정책으로 여가 활성화를 뒷받침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여가를 통해 일과 생활이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린 셈이다. 소확행이 ‘로망’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실화’가 되는 일을 경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