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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자가 트라이애슬론을 즐기게 되기까지
이영미 「마녀체력」 저자 2018년 08월호



혹시 해외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는지? 가능하면 일찌감치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바란다. 단순히 가격이 싸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출력한 티켓을 가슴에 품고 다녀보라. 어떤 고약한 일이 벌어져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한 위력이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모험을 강행하느냐고?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일 때문에 가지 못할 확률이 높다. 성과주의 세상의 일 중독자 사회에서는 일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이다. 여가는 남는 시간에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다. 따라서 휴가를 가지 못하게 발목을 끌어당기는 핑계는 차고도 넘친다. 마치 오로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거품을 문 채 쓰러질 때까지 원형 트랙을 끝없이 돌고 있는 것이 우리들 신세다.
언제부터 인간은 고되게 일하기 시작했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말한다. 대략 1만년 전, 자유롭지만 가혹했던 수렵인의 삶을 기꺼이 버리고 인류가 밀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고대 유골을 조사해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또한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근로는 미덕’이라고 주장한 근대의 간악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언급한다.
멀리서 실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내가 바로 그랬으니까. 책의 출간 시기를 맞춰야 할 때는 야근을 한 뒤에도 끝내지 못한 일을 집에까지 들고 왔다. 교정을 마칠 때까지는 집안일도, 아이 얼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어서 자라”고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눈을 비비며 하얗게 밤을 밝혔다. 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 길로 머리를 졸라매고 출근을 하기 일쑤였다. 결국 젊은 나이에 고혈압 환자가 됐고, 사람 만나는 일이 싫어졌다. 그 좋아하던 책 읽는 일마저 놔버리고 말았다.
그런 나를 되살린 것은,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강해진 체력이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 시간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야근을 멈추고,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설거지를 끝내면 동네 학교에 나가 운동장을 뛰었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슈퍼를 왔다 갔다 하다가, 급기야는 사이클로 바꿔서 젊은 청년들 뒤를 따라다녔다. 나와는 아주 먼 세상 얘기라고만 여겼던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 마흔 살에야 깨닫다니!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가이며, 그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마치 중요한 회의를 잡는 것처럼 운동을 하며 체력을 쌓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를 가장 우선순위로 잡는 사람이 됐다.
엊그제 몽블랑 트레킹을 다녀왔다.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해 6개월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차근차근 몸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며 얼마나 행복했던지! 하얀 눈과 색색의 야생화들이 흩뿌려진 트레킹 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3박 4일간 80여km를 걸어야 했기에, 등에 진 짐을 줄이는 게 관건이었다. 없으면 안 될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배낭에 넣었다. 여가란 바로 그런 것이다. 사치품이 아니라,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가장 중요하며 시급하게 챙겨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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