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딴짓으로 팍팍한 일상에 숨을 불어넣자고 다독이는 이들이다. 독립잡지 『딴짓』을 펴내는 딴짓 시스터즈 3인방(박초롱, 황은주, 장모연) 중에서 1호와 2호를(이들은 서로를 1호, 2호, 3호라고 부른다) 만나 ‘딴짓’의 모든 것에 대해 들어봤다.
‘밥벌이하며 딴짓하는 모두를 위한 잡지’라고 소개돼 있다. ‘딴짓’을 주제로 한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가 뭔가. 황은주(이하 2호) 사실 서로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 공기업을 다니던 1호가 퇴사를 앞두고 인맥을 동원해 NGO, 출판, 문화기획 등 관심 있던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는데 출판 쪽에서 내가 간택됐다. 만나자마자 초면인데도 연봉, 조직구성 같은 걸 거침없이 물어보더라(웃음). 당시에 독립출판 수업을 듣고 있었던 터라, 그 이야기를 나누다 의기투합해 바로 잡지 기획에 들어갔다. 둘 다 디자인을 못해 지인을 통해 3호를 소개받았다. 만난 지 6개월쯤 되던 2015년 9월 창간호가 나왔다. 박초롱(이하 1호) 딴짓이라고 주제를 잡은 건 만드는 우리들의 공통된 관심사를 다뤄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셋 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갈망하고 이리저리 관심사를 찾아 기웃거렸는데 그걸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게 ‘딴짓’이었다.
아, 이 질문이 늦었다. 대체 ‘딴짓’이란 게 뭘까? 1호 딴짓은 ‘좋아하는 일’이다. 싫어하는 일을 굳이 딴짓으로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2호 내게 딴짓은 ‘두 번째 삶’이다. 본업에서 벗어나 시도해볼 수 있는. 그리고 그거 아나? 영어로는 딴짓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가 없다. 1호 우리는 특정한 시기에 해야 하는 일(main thing)이 명확히 정해져 있어 그런 게 아닐까. “네 나이 때는 이거 해야지 지금 그렇게 딴짓 할 때냐”라고 하잖나. 그런 구별이 없는 문화에서는 딴짓이라는 말이 없는 게 당연하겠다 싶다. 그래서 딴짓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해질 때까지 딴짓을 하려고 한다.
잡지 『딴짓』에서 파생된 것들이 많더라. 그야말로 딴짓의 세포분열 같다(웃음). 2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파티,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파티, 독립출판 워크숍 등을 열고 있다. 최근엔 독자 한 분이 놀고 있는 한옥을 써보라고 하셔서 저렴하게 공간을 얻었다. 김성용 운영자의 ‘남의 집 프로젝트’와 연계해 거기에 서재를 만들려 한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자신의 공간을 모르는 사람에게 개방해 다양한 취향을 간접 체험하는 모임인데, 그 프로젝트도 운영자의 ‘딴짓’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간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딴짓러’는? 2호 지금까지 8권의 잡지를 만들었는데, ‘프로젝트하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는 디자인스튜디오로 쓰이고 주말이나 평일 점심·저녁 등에는 각기 다른 주인들이 와서 가게를 꾸린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스태프로 일하는 사람이 거기서 하루쯤 셰프가 돼보거나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해 주말에 자신만의 아이템을 시험해보기도 한다. 그들도 나름의 딴짓, 하루의 딴짓으로 그 공간을 꾸려가는 거다.
개인적으로 하는 딴짓들도 있을 텐데. 1호 안정적이던 공기업을 그만둔 뒤 하고 싶던 여러 가지 딴짓을 했다. 책이 좋아 북스테이도 해보고 지금은 성산동에서 책 읽는 술집(book bar) ‘낮섬’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넘게 미뤄온 승마와 기타도 배웠고 어느 여름엔 연극을, 얼마 전엔 나무공예에 푹 빠졌다. 글쓰기는 나의 꾸준한 딴짓이다. 2호 출판편집자가 본업이라면 『딴짓』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딴짓이고, 캘리그래피도 하고 있다. 3호가 진짜 딴짓을 많이 한다. 3호는 지금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데 드라이플라워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고, 웨딩드레스 판매 가게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그 모든 딴짓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뭔가? 속된 말로 돈도 안 되는데(웃음). 2호 가장 큰 동력은 ‘재미’겠지. 그리고 우리 모두 두세 번씩 퇴사를 해본 터라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인생이 크게 망하거나 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시도해보고 찔러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이 굉장히 중요한 자산이 됐다. 또 예전 세대처럼 30년 넘게 똑같은 일을 할 수 없는 시대다. 인생 3모작, 4모작이라니 딴짓을 통해 그런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1호 그런 느낌 있잖나. 일을 할수록 사실은 일과 더 멀어지는 느낌? 물론 우리에겐 일 말고도 삶의 중요한 부분들이 많지만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일이 그렇게 느껴지면 삶의 채도가 점점 낮아지는 거다. 그래서 딴짓을 통해 자신만의 색을 입히려는 시도를 하는 게 아닐까. 당장 돈은 안 되더라도 그걸 통해서 스스로 삶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딴짓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1호 음. 난 어떻게 변했지? 2호 1호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그 전에는 해야 하는 걸 하는 사람이었지만(웃음). 나 같은 경우엔 본업과 딴짓을 병행하면서 시간과 체력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회사는 그만둘 수 있지만 『딴짓』은 못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정체성과 직결돼 있으니까. 『딴짓』을 만들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구나, 틀린 게 아니구나, 그런 확신을 갖게 됐다.
우린 왜 그렇게 딴짓이 어려운 걸까? 1호 생계가 먼저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집에 빨리 가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남는 시간에 잠이라도 조금 더 자야 하고. 또 심리적인 자기 검열도 이유가 될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자유롭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 왠지 딴짓을 하더라도 돈벌이에 도움이 되거나 노년에 먹고사는 데 보탬이 돼야 할 것 같은 생각 말이다. 2호 1호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었는데, 그냥 자기 전에 좋아하는 책을 한 줄만 읽더라도 그게 딴짓이 아닐까 하는. 그런데 매일매일 좋아하는 구절을 소리 내 읽다 보면 약간이나마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딴짓도 그런 것 같다. 엄청 거창한, 돈 주고 무언가를 배우거나 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내 삶을 변화시키는. 그렇게 접근하면 좋겠다.
나도 딴짓 좀 해볼까 하는 사람들에게 팁을 준다면? 1호 사소한 일상의 일들, 난 페인트칠을 좋아해서 집에서 마구 페인트칠도 하는데 그런 것들까지도 딴짓이 될 수 있다. 혼자 집에서 이창동 감독의 전작을 하루에 다 보는 ‘방구석영화제’를 개최한 적도 있다. 자신을 위해 좋아하고 재밌는 일 하나를 ‘해보면’ 된다. 2호 ‘작은 기록’을 추천한다. 결국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자기 자신 아닐까? 기록을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다. 한 지인은 영수증 뒤에 그림을 그린다.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크로키하거나 짧게 메모를 남기는 거다. 이처럼 꼭 글이 아니어도 괜찮고 요즘은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도 좋으니 나만의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도 쉽고 재밌는 딴짓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