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는 핏줄로 이어진 가족보다 취향으로 이어진 남이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제 그 말이 결코 낯설지 않은 시대다. 혼자이되 때론 함께이고 싶은 1인 가구 사이에 ‘취향’을 공유하는 모임이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좀 더 특이한 모임이 있다. 이름하여 ‘남의집 프로젝트’! 내 집에서 내 취향을 나누고 싶은 집주인과 그 집에 놀러가고 싶은 손님을 연결해주는 거실 중개 프로그램이다. 모여서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1인 가구를 대표해 『나라경제』 기자가 김성용 문지기를 만나러 갔다.
명함에 적힌 직함이 ‘남의집 문지기’다. 나는 집주인을 설득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누군가를 들이는 일을 한다. 그래서 업무에 가장 일치하는 명칭 ‘문지기’로 지었다.
남의 집 방문 중개 서비스는 처음이다. 카카오에서 근무할 당시 셰어하우스에 살았는데 같이 사는 형이 거실을 예쁘게 꾸며놨다. 그 공간을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스티브 잡스가 창고 창업이라면 나는 거실에서 창업한다’며 장난 삼아 시작했다. 신청자를 받아 직접 업무 관련 멘토 역할도 하고 서재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게 현재 서비스의 모태다. 지금은 호스트 취향을 모임 이름의 끝에 붙이면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예를 들어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남의집 고수’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취향을 나누는 거실 여행 서비스’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행’이라 표현한 이유는? 창업을 하니 업무 정의가 필요했다. 커뮤니티 서비스, 공간비즈니스라 말한 이도 있었지만 남의집 프로젝트를 정의하기엔 부족했다. 서비스를 이용한 호스트와 게스트에게 물어본 결과 많은 분들이 ‘여행’이라 정의하더라. 남의집 프로젝트가 여행을 100%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일상에서 잠깐 벗어나고픈 사람에게 가성비 좋게, 가심비 높게 작은 여행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어 여행 서비스라 정의했다. 루브르박물관은 10달러 정도면 들어가지만 남의 집은 돈 내고도 못 들어간다. 남의 집만큼 미지의 공간은 없다.
호스트 섭외가 어려울 것 같은데. 처음엔 공간이 있고 누군가를 초대할 마음을 지닌 지인들을 회유와 협박을 통해 구워삶았다. 그 다음에야 낯선 이들을 초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기획회의를 열었다. “집에서 뭐 하세요? 뭐 좋아하세요?”란 질문을 던져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내며 모임들을 꾸려갔다. 프로젝트 초기엔 내가 모두 직접 참여해 모임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그걸 보고 호스트로 자청하는 이가 늘었고 지금은 호스트의 70~80%가 먼저 연락해온다.
자기 집을 오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고 싶어서 호스트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취향의 ‘엑스맨’이라고나 할까. 영화에서 초능력을 가진 엑스맨들은 자기들이 원래 괴물인 줄 알지만 누군가가 이들을 알아보고 소환해 학교를 만든다. 남의집 프로젝트의 호스트를 자청하는 분들도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진 엑스맨을 소환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호불호가 강한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평소 눈치를 보며 먹던 고수를 ‘남의집 고수’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부류의 엑스맨 6~7명을 불러 모아 고수 1㎏을 맘껏 먹을 수 있는 기쁨을 얻는다.
보통은 친구나 지인과 얘기하는 게 더 편하지 않나? 혼자 사는 사람은 집에서 뭔가를 하고는 싶은데 가족과는 잘 안 된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오랜 기간 다른 길을 걸으며 살아와 말이 잘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다. 나 역시 동창들을 만나면 맨날 추억만 팔곤 했다. 남자들끼리는 취향을 나누는 흥을 못 견뎌 한다. 그게 굉장히 헛헛하다. 모두들 마음 한편에 ‘현재의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낯선 이와 시간을 보내려는 솔로들의 심리는 뭘까? “요새 너 어떻게 지내니?”처럼 앞뒤의 이야기가 귀찮은 게 아닐까. 모르는 사람은 바로 “뭐 좋아해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 얽힌 관계와 허례허식이 많아지고 그게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남의집 프로젝트는 게스트하우스의 느낌이다. 서로 모르는 여행자들이 하룻밤 우연히 테이블에 앉아 떠들다 가는 장면. 거기서 우린 의외로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자유롭게 자신을 꺼낼 수 있고 어차피 내일 보지 않을 거라는 게 담보되기 때문이다.
호스트·게스트가 누리는 특별한 기쁨은? 남의집 호스트가 되면 무뎌진 내 일상에 제3자가 갑자기 끼어들어 ‘내 공간이 괜찮고 내가 잘살고 있다’는 걸 자각시켜준다. 그리고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 게 원래 기획의도였는데 프로젝트를 경험한 게스트들은 “취향에 맞는 사람을 보게 돼 좋았다”고 평가하더라. 우리는 뭔가를 경험해보지 않으면 자기를 잘 모르는데 남의집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성향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나도 매번 남의 집에 방문하면 여행가는 느낌이다. 평소에 가보지 않을 법한 동네를 가고 매번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이 풍족해졌다.
해외에서도 남의집이 열리더라. 싱가포르에서 ‘남의집 솔로생활’(12월 1일)이 열린다. SNS를 보고 호스트가 문의해와 해보자고 했다. 게스트가 싱가포르 교민일지, 한국인일지 궁금했다. 재밌는 게 다 한국인이었고 싱가포르에 갈 계획도 없던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보고 ‘저 집 이야기가 재밌으니 이참에 여행도 가보자’ 하고 신청했더라. 이제 다양한 나라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 1월에는 상하이에서 열리고 일본, 베트남, 파리도 예정돼 있다.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나? 프로젝트에 따라 적게는 무료, 많게는 5만원의 입장료가 있는데 수수료가 30% 정도 된다. 비즈니스 모델은 거실형 에어비앤비(Airbnb)다. 호스트 요청이 많이 들어와 이제 혼자서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멘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엔젤 투자자나 창업 경험이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
멤버십으로 운영하면 편하지 않을까. 주위의 권유가 많았지만 고민하다 안 했다. 멤버십 역시 다시 사회적 관계를 맺어주는 거라 되도록 관계에 지친 분들이 잠깐 여행할 수 있는 ‘느슨한 연결’ 서비스를 유지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최근 1인 가구가 늘면서 코리빙(co-living), 공간비즈니스가 뜨고 있는데 거실 라운지에서 공간 구성원들끼리의 융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의뢰하는 곳이 많아 사업 제휴를 논의 중이다. 또한 내년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남의집이 오픈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