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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위상 예전만 못해도 안보적 의미는 충분
서륜 농민신문 정경부 차장기자 2020년 01월호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쌀을 단순한 곡식 이상의 신성한 존재로까지 여겼다. 쌀을 신에게 바칠 만큼 가경(嘉慶)스런 곡식으로 보고 추수한 햅쌀을 성주(가정의 수호신) 단지에 넣는 풍습을 지켜왔다. 산모와 태어난 아기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할 때도 삼신상에 흰쌀밥과 미역국을 올렸다.
쌀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대단했다. 고려시대 이후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으면서 모든 재화와 부를 가늠하는 기준이자 물가를 측정하는 잣대가 바로 쌀이었다. 천석꾼이니 만석꾼이니 하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쌀은 급료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쌀은 아무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아니었다. 1960년대 이전 우리는 해마다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겨야 했다. 하지만 꾸준한 품종 개량과 함께 영농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결과 국민들의 먹는 문제는 해결됐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통일벼가 처음 보급돼 쌀 수확량을 크게 늘렸을 때의 감격을 기억하고 있다.
수확량뿐만 아니라 품질도 크게 높아졌다. 과거 국내에서 밥맛 좋기로 소문난 벼는 ‘추청’,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일본 품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일본을 뛰어넘는 고품질 벼 품종개발에 매진한 결과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품종의 90%가 국산이다.
이처럼 국산 품종이 일본산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국산을 애용하자는 애국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밥맛이 좋아 소비자들이 즐겨 찾기 때문이다. 품질로 승부해 이긴 것이다. 지금까지 육성된 국산 벼 품종과 우리의 벼 육종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쌀이 갖는 위상과 중요성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우선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한때 576만톤(4천만섬)을 넘던 쌀 생산량은 2019년 374만4천톤까지 줄었다.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밥보다는 피자나 햄버거·치킨 등을 즐겨 먹는 식생활이 확산되면서 1인당 쌀 소비량이 1980년 132.4kg에서 2018년 61kg까지 쪼그라들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쌀 수입이 이뤄진 지도 20년이 넘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1995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은 관세화를 통해 농산물시장을 개방했다. 정해진 관세만 내면 어느 농산물이든 수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쌀을 예외로 했다. 이를 ‘관세화 유예’라고 부른다.
2014년까지 두 차례 관세화를 유예한 대가로 우리나라는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일정 물량(2014년 이후 40만8,700톤 고정)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2014년 말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두고 한 번 더 유예할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결국 정부는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기 위해서는 TRQ 증량이 불가피하다며 그해 9월 30일 관세화를 선언하고 WTO에 쌀 관세율을 513%로 산정한 양허표 수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쌀을 많이 수출하는 5개국(미국·중국·호주·태국·베트남)이 ‘513%는 너무 높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정부는 2015년부터 이들과 협의를 진행했고 최근 513%를 확정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관세를 내고 들어올 수입쌀은 현재로선 사실상 없다.
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해서 쌀이 가지는 안보적 의미까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기상이변 등으로 세계적인 식량부족 사태가 올 경우 돈 주고도 식량을 사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을 비롯한 식량의 자급률을 지속적으로 높여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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