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이 있어야 일을 하지”,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은 먹고 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또 자주 접하는 말이다. 음식을 먹는 것(食)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수면, 노동, 인간관계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먹는 일(食事)에 과도하게 종속돼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혼인과 출산처럼 삼시 세끼를 먹는 것 또한 인간이라면 반드시 행해야 할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온 윗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즉 음식을 먹는 행위에 있어 지금껏 인간은 능동적 주체가 아닌 수동적 객체였을 수 있다. 실상 먹을 것이 부족했고 먹는 데 쓸 돈도 시간도 부족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치·경제·문화·과학기술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친 시대의 발전은 개인의 가치와 행위,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먹는 것 또한 예외이지 않다. 늦게까지 이어진 자율학습과 연장근로 등으로 늘 잠이 부족한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아침은 결코 조식(早食)을 위한 시간이 아닌 등교와 출근 준비로만도 한없이 분주하고 한시가 아쉬운 시간이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점심은 중식(中食)을 위한 시간이 아닌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는 시간이며, 자기계발에 목마른 직장인에게 저녁은 석식(夕食)을 위한 시간이 아닌 어학원이나 피트니스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시간이다.
직장 동료들과 다 함께 몰려 원치 않는 메뉴를 두고 불편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여유롭게 혼밥을 즐기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한껏 늘어난 체중을 감량하거나 적정 체중을 유지하려는 이에게 하루의 식사는 세 끼가 아닌 한 끼이기도 하다. 또 한편에서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별다방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동물성 성분이 첨가돼 있지는 않은지, 불매운동 중인 기업은 아닌지 제조사와 인증마크, 원재료명 등을 세심히 살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음식을 먹는 데서 온전한 주체가 돼가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당위성과 획일성이 강요되고 그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벗어나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개성이 존중되고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
음식을 ‘먹고 안 먹고’에 대한 이분법적 결정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에 있어서 맛, 양, 가격 등의 선택 기준들이 양극화를 넘어 파편화되고 있다. 담백한 맛과 강렬한 맛, 많은 양과 적은 양, 저렴한 가격과 비싼 가격, 많이 찾는 곳(것)과 그렇지 않은 곳(것) 등 개인이 지닌 가치와 처한 상황에 따라 선호가 매우 극명하게 갈려 구성원 전체를 꿰뚫는 공통 분모를 찾기는 점차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음식과 식사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 변화는 음식에 대한 소비 행위로 전이된다. 그 결과 가정간편식(HMR), 밀키트(meal kit), 비건(vegan), 친환경 등 특정 제품뿐만 아니라 가심비(價心比), 이야기화(storytelling),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 등 음식을 둘러싼 기업과 매장, 유·무형의 서비스 등에 대한 판단과 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뿐만 아니라 향후 지속 및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비의 특정한 경향은 이전과 견줘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일시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올해의 식품 소비와 외식의 공통적 경향을 꼽자면 플랫폼을 둘러싼 첨예한 수 싸움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 직접 가정에서 농·축·수산물을 요리해 먹든, 완전 혹은 반(半)조리된 가공식품을 구매해 먹든, 음식점을 방문하거나 배달·포장해 먹든 우리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빈도와 양, 먹는 데 쓸 수 있는 비용은 한정적이다. 최근 양과 질 모두에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가공식품의 파상공세 속에 외식이 배달·주문·결제 플랫폼을 통해 그나마 활로를 모색해왔다면 식품 가공 또한 이들 플랫폼과의 결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양의 제한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시간의 제한을 확대하거나 폐지하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따라서 올해는 ‘가공식품’과 ‘외식’의 2차전이 될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