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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소비가 적은 식단은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
심채윤 「요리를 멈추다」 저자 2020년 03월호


여느 해보다 따뜻했던 겨울이 지나간다. 겨울이 따스했기에 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겨울답지 않았던 포근한 날씨가 다행스러운 이들도 많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온도 조절장치가 고장났다. 제주의 1월 기온이 20도를 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눈이 내렸다. 호주와 아마존은 오랫동안 불탔다. 만년설도 사라지고, 알래스카가 춥다는 이야기도 옛말이다. 기후변화를 넘어서서 기후위기라는 말을 실감한다.
폴 호컨의 책 「플랜 드로다운」은 전 세계의 전문 연구진 70여명과 120명의 자문단이 검증해 기후변화 대책 100가지를 제시한다. 에너지, 식량, 교통 등 여러 문제에 걸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중 식량에 대한 해결책이 인상적이다. 채식 위주의 식단 전환은 100가지 중 4위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전 세계 약 78억명의 인구가 하루에 두세 끼를 먹으니 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탄소 소비량과 물·에너지 사용량이 크게 좌우된다.
지금까지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자 취향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78억명의 선택이 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플라스틱 숟가락을 하나씩만 소비하며 식사를 해도 78억개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배출된다. 단 한 번의 식사에서 말이다. 종이컵, 빨대, 비닐 등은 부가적인 예로 생각할 수 있겠다. 각종 소모품 생산은 또 다른 방법으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우리의 음식과 소비 선택이 매 순간 중요한 이유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우리 모두가 된다. 나와 타자를 구분 지으면서 생기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구분의 경계선을 좀 더 넓히면 어떨까? 인종과 피부색, 지역,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함께 살고 있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적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될 때 환경도 가까워진다.
밥상을 좀 더 간소하게 차려봤다. 땅에 최소한의 피해를 주면서 자란 유기농 작물들이다. 채소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큰 동물성 식품을 피했다. 오늘 우리가 먹는 것으로 자손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보람차다. 잠깐의 혀를 위한 즐거움보다 다음 세상을 살아갈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이 가벼워지니 덩달아 몸과 마음도 가벼워진다. 현대인의 병은 과하게 먹고 잘못된 음식을 선택하는 것에서 기인한 ‘식원병(食原病)’이 대부분이다. 이미 1970년대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조지 맥거번의 보고서가 이를 입증했다.
모두가 완벽한 채식 식단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탄소 소비량을 최소화하는 식단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조만간 식당 메뉴판에서 탄소 소비율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다이어트를 위한 열량(kcal) 표시가 지금까지의 추세였다면 이제부터는 지구를 살릴 수 있는 탄소 소비율 표시가 필요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탄소 소비가 제한되는 시대가 됐다. 지금까지 경제성장과 탄소 소비량은 정비례 그래프를 그려왔지만 더 이상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탄소 제한이라는 명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공평한 경쟁이 가능한 시점이라 볼 수 있다. 친환경 에너지·교통수단·먹거리, 리사이클과 업사이클이 가능한 제품들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새로운 기술과 기회로 전문가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국제적 탄소 제한 표준안’이 발표되면 그때는 이미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 내가 소비하는 탄소량은 얼마나 될까? 지금 우리가 쓰면 쓸수록 자녀 세대는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단지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렵고 힘든 삶이 될지도 모른다. 2020년, 이젠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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