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꾼다.’ 내 명함에 쓰인 문구다. 이 글귀를 보고 있으면 마치 중국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우린 꿀벌 한 마리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하진 않았다. 서울 하늘 아래 집 한 칸 없는 내게 벌을 키울 공간이 있을 리는 만무한 터. 6개월간의 수소문 끝에 건너건너 아는 분께 옥상을 하나 빌렸다. 2013년 3월, 그렇게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엔 서울 명동 한복판 유네스코회관 옥상으로 진출했다.
취미로 도시양봉을 배우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도 시작했다. 밀려드는 문의로 순식간에 모든 과정이 매진을 거듭했다. 2013년 단 2곳에 불과하던 도시양봉장은 3년 새 42곳까지 늘어났다. 전업 도시양봉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계획한 전업 도시양봉가 양성과정은 2014년에도, 2016년에도 번번이 예산의 한계로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2017년 10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역 일자리 창출 간담회 참석 요청 전화였다. 기대 없이 참석해 사회소외계층의 전업 도시양봉가 양성 프로젝트를 담담히 얘기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는데 11월쯤 연락이 왔다. 2018년부터 사업을 시작해보자며. 온 힘을 주며 쫓아다닐 때는 번번이 엎어지던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비긴어게인(Beegin Again) 프로젝트는 꿀벌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소외계층 사람들이 전문 도시양봉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업이다. 올해로 벌써 3년 차에 접어든다. 서울성동지역자활센터, 성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성동구청과 함께하는 이 사업으로 현재 총 7명이 꿀벌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며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비일일구꿀벌구조대(Bee119) 활동도 우리의 대표 사업이다. 구조대는 필요한 곳에 출동해 무료로 벌집을 제거해준다. 꿀벌은 우리에게 자산화가 가능하기에 비용을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타산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전국 소방관 출동건수의 약 24%를 차지하는 벌집제거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는 의미도 컸다. 꿀벌을 안전하게 포획하는 꿀벌포획기도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성동소방서와 함께 소방관 대상 벌집제거 교육도 4차례 진행했다. 올해부터는 꿀벌구조대 예방사업단도 운영한다.
아쉽게도 현재 법적으로 벌집제거 민원은 생활민원 중 긴급사항으로 분류돼 소방서로 민원이 접수되면 반드시 소방관이 출동해야 한다. 동물보호 영역처럼 민간이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다면 전국적으로 꿀벌구조대가 더 탄탄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해는 도시 환경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허니디엔에이(Honey DNA)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도시양봉장이 생기면 주변 꽃의 발화율이 20% 가까이 높아진다. 꽃이 많아지면 곤충이 늘어나고 새도 유입된다. 생산된 꿀 속 꽃가루를 분석하면 주변에 어떤 꽃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사업모델은 이제야 선순환 구조를 마련했다. 꿀벌구조대가 벌을 구조해오고, 구조된 벌을 비긴어게인사업단이 도시양봉장에서 사육해 꿀을 생산하면, 그 꿀을 정직한 가격에 유통하고, 수익의 일부를 꿀 분석과 꿀벌정원 조성에 사용하는 것이다.
도시양봉의 목적은 단지 꿀만이 아니다. 취약계층의 일자리도 창출하고, 소방관의 업무도 줄여주며, 도시환경도 개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꿀벌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꿀 그날을 기대하며 도시양봉장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