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게 잘 자야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알면서도 한국인은 잘 못 잔다. OECD 국가 중 가장 적게 자며, 셋 중 두 명은 잠이 모자란다고 말한다. 직장인 565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확인된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6분, 일반적인 권장 수면시간보다 1~2시간가량 더 적다. 수면 질도 낮아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42만여명이었던 불면증 환자는 2019년 63만명 정도로 늘어났다.
슬립 테크(sleep tech)는 이렇게 잘 못 자는 사람들, 수면의 질이 나쁜 사람들을 위한 기술이다. 잘 못 자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걱정·스트레스, 수면 환경, 오락, 직장·학교 일정이다. 특히 한국인은 취미·사교·자기계발 등을 위한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 짧게 자도 잘 자고 싶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슬립 테크는 이런 수면의 약점을 공략한다.
솜녹스(Somnox)는 잘 때 끌어안고 잘 수 있는 수면 로봇이다. 사용자의 호흡과 심박수를 복제해 함께 숨 쉬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수면을 유도하는 음악과 소리를 들려준다. 수면 패턴을 확인할 수도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 학생들이 창업해 만든 제품으로,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수면제 없이 편안히 잘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안했다고 한다.
프랑스 신생기업 뉴럴 업(Neural Up)은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수면으로 안내하는 동명의 앱을 만들었다. 2019년 이 회사가 CES에서 선보인 버블 젠 팟(Bubble Zen Pod)은 시청각을 격리해 환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의자다. 달걀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서 뚜껑을 닫고 소리를 듣다 보면 피로와 우울증, 분노 같은 감정이 줄어든다고 한다. 다른 회사인 뉴캄(NuCalm)에서는 간단히 헤드폰과 수면 안경, 생체신호 측정기 등을 이용해 스트레스 완화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수면 상태를 추적하는 앱과 제품도 많다. 애플 워치(Apple Watch)나 핏비트(Fitbit), 미밴드(Mi Band) 같은 손목형 웨어러블 기기들은 대부분 수면 패턴 측정 기능을 제공한다. 슬립 사이클(Sleep Cycle) 같은 앱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수면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코골이를 녹음하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픈 사람이 쓰면 좋다. 노키아 슬립(Nokia Sleep) 같은 제품은 침대 매트리스에 패드를 깔아두면, 몸의 움직임을 감지해 수면 상태 정보를 기록한다. 2020년 출시 예정인 포켓몬 슬립(Pokemon Sleep)은 가장 흥미로운 앱이다. 잘 때 켜놓으면 수면 상태를 추적해 게임을 할 수 있다.
슬립 테크의 핵심은 여러 기기에 내장된 각종 센서를 이용해 신체 상태를 기록하고, 스마트홈 기술을 이용해 수면 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하며, 시청각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데 있다. 다만 대부분 아직 ‘실험 단계’에 있으며, 개개인에 따라 효과가 많이 다르게 나타난다. 시장은 싸고 단순한 제품에서, 비싸지만 증거 기반의 인증된 기술 제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 슬립 테크가 앞으로 더 깊은 잠을 원하는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