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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고통, 공연한 기억은 없다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2020년 07월호



트라우마라는 말이 널리 쓰인 지는 불과 1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주로 신체적 외상을 일컫는 말이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말은 정신과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용어였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에게서 독특한 심리적 현상이 대거 관찰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PTSD라는 말이 처음으로 진단기준에 등재됐다. 하지만 한동안 트라우마는 생사를 오가는 전투나 끔찍한 범죄피해에만 한정적으로 쓰이는 용어였다.
이제는 온갖 곳에 트라우마라는 말이 쓰인다. 취업에 실패해도 트라우마, 실연을 당해도 트라우마, 심지어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트라우마를 받는단다. 하지만 용어가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트라우마가 흔해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예전이라면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삶의 불행이 이제 의학적 트라우마가 됐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PTSD를 많이 앓지 않았다. 조국을 지킨다는 숭고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달랐다. 전쟁의 의미를 찾지 못한 군인은 작은 충격에도 힘들어했다. 현대사회는 분명 제2차 세계대전보다는 베트남전에 가깝다. 경쟁은 치열해지지만 삶의 의미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원칙적으로 심리적 충격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은 유용한 진화적 형질이다. 같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는데도 울분과 한, 앙심이 삶에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다면 곤란하다. 이제는 잊어도 되는 고통의 기억이지만,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다. 그런데 그 유령은 왜 떠나지 않는 것일까?
머리를 감싸고 뒤흔든다고 해서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볼 때는 사소한 일도 자신에게는 큰 트라우마인 경우가 있다. 왜 나에게 그 사건이 유독 큰 고통으로, 그리고 유령으로 남게 된 것일까? 잊으려고, 없애려고 하는 노력을 살짝 접고 귀를 열어보자. 고통이 들려주는 메시지다. 이유 없는 고통, 공연한 기억은 없다. 지금 살아 있는 우리 자신에게 깊은 조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구체적인 가해자를 찾으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시적 방어 기전은 트라우마를 고착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보상도 받고 사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서 초등학교 무렵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찾아가 따진다면, 일흔이 넘은 어머니에게 왜 어린 시절 예뻐해주지 않았냐며 이를 북북 간다면 정말 곤란하다. 고통의 기억은 무엇인가를 애써 알리려고 했지만 수십 년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인스턴트 위로를 받으려는 것도 흔한 실수다. 적당하게 골라잡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전가한다. 마음의 소리가 ‘거짓말 마!’라고 외치고 있지만, 우격다짐으로 귀를 틀어막고 ‘트라우마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공허한 위로를 하는 것이다.
물론 PTSD에 준하는 심각한 상태라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글로 적어보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이와 경험을 나눠보는 것도 좋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고통의 기억이 들려주는 깊은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고통의 기억에 새로운 의미가 덧입혀지고, 오랜 상처는 아물며, 새로운 희망의 싹이 솟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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