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업계 지인들과 사소한 내기를 벌였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과 온라인 태생 이커머스 업체들 중 누가 승기를 잡을 것이냐에 대해서였다. 넷 중 나 혼자만 전자에 표를 던졌다. 기존 유통사들이 가진 덩치에 비해 그간 몸은 사릴 만큼 사렸고, 이커머스도 경험할 만큼 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실자산 가치와 흑자 재무의 체력이 투자와 적자로 버티는 쪽보다 우세하리라는 평범한 시선이기도 했다. 틀린 사람이 밥을 사기로 했다. 그 후 2년이 지나 2021년이 밝았다. 코로나19가 풀리면 나는 밥을 사야 할 것 같다.
돌아보면 국내 이커머스가 시작된 이래 패권의 변화는 매번 신흥 강자가 일으켰다. 지금도 쿠팡, 마켓컬리, 무신사로 대변되는 루키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통 유통사와 달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들은 어떤 차별점으로 기업 가치를 키워나갈까. 각자 해석이 다르겠으나 나는 이를 두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경영과 투자의 결정이 무엇에 기반하는가’와 ‘이해관계의 방향이 어디인가’다.
전통 유통사의 경영적 판단과 자원 투자는 자산기반의 사고로 접근하고, 튼실히 자리를 잡은 기존 이해관계의 조율에서 출발한다. 부동산, 매장, 점주, 과거 프로세스, 기존 비즈니스 모델 등 그동안 기반이 돼준 자산 사이사이에는 촘촘히 박힌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다. 이를 당면한 시장 변화에 맞게 조율하는 것이 큰 숙제다. 이해관계의 방향이 뒤로 향한다. 한마디로 지킬 게 많은 것이 판단을 흐리고 몸을 굼뜨게 한다.
반면 스타트업 이커머스는 고객기반의 사고로 이해관계를 새로 설정한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이기에 딛고 설 자산기반도 없다. 이들에게 기업 가치와 자산은 앞으로 창출해야 할 고객이 전부다. 고객중심의 사고 외엔 할 것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구조다. 고객중심의 사고와 의사결정은 조직 강령이 아니라 생존의 절박함이다. 레거시(legacy)가 없으니 변화와 혁신에 온전히 몸을 실어도 이해관계 충돌과 조율의 숙제가 적다. 이해관계는 앞으로 생성해야 할 일이다. 이해관계의 방향이 앞으로 향해 있다. 한마디로 더 빠르고 과감하게 판을 흔들 수 있다.
지금까지 판세는 이러했으나 앞으로는 또 모를 일이다. 유통의 거인들이 긴 잠을 깨고 어찌 나올지, 과감하다 못해 과하게 투자로 끌고 온 스타트업 이커머스들이 삐걱거릴지 말이다. 다만 어느 쪽이 흥하든 향후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숙성하리라 전망한다. Life-Managing과 Life-Styling 시장이다.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나뉘는 가르마다.
Life-Managing 시장은 사람의 결핍(needs)에 기반한 소비를 해결하는, 식품을 포함한 생필품 위주의 시장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구색·가격·물류다. 인프라와 스케일 면에서 규모의 경제를 얼마나 빠르고 완성도 있게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Life-Styling 시장은 사람의 욕구(wants)에 기반한 소비를 해결하는 패션·뷰티·리빙 위주의 시장이다. 경쟁력의 핵심은 취향을 만족시키는 콘텐츠와 큐레이션이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구색이 우선이며, 구색은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얼마나 완성도 있게 갖추느냐가 관건이다.
오히려 기술이 이커머스시장에서 승자를 낙점하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테크 회사의 수익과 생존이며, 보다 많은 기업에 쓰여야 그들의 기업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아마존조차 이커머스 회사지만 AWS(Amazon Web Services) 클라우드 서비스를 다른 이커머스 회사에 제공한다. 새롭고 우월한 기술이 나타나면 시차가 있더라도 시장에 차츰 보급될 것이다. 시차로 패권이 갈린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영의 판단과 속도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Life-Managing과 Life-Styling 중 어디에서 승부해야 할지 플랫폼의 정체성과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고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이 정해진 시대엔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