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는 전기배터리와 관련된 특허침해소송이 한창 진행 중이다. 놀랍게도 한국 기업인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그 당사자다.
2019년 5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이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자사 인력을 빼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ITC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을 특허침해로 제소했다. 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이 8건의 특허무효심판(IPR; Inter Partes Review)을 제기했으나 현재 8건 모두 기각돼 LG화학이 유리한 상태다.
어느 곳이 최종적으로 승리할지는 더 두고 보면 알겠지만, 미국이라는 가장 큰 시장에서의 명운이 걸린 소송이어서 결론을 예측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과거 사례를 보면 코닥과 폴라로이드사의 특허소송처럼 일방이 패소해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수천 명의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치명적인 손해를 입은 경우도 있고,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처럼 서로 합의해 양측 모두 계속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경우도 있다.
하나의 제품에도 여러 지재권 공존···보호기간은 지재권 종류별로 상이
특허가 뭐길래 이렇게 이슈가 되는 것일까. 특허는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의 한 종류다. 지재권은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 저작권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차이를 먼저 알아보자.
우선 특허는 발명가가 만든 발명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 발명가가 자신의 발명에 대해 특허를 받은 경우 다른 사람이 그 발명품을 제작하거나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20년간 갖는다. 발명가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장치, 물질, 프로세스 등을 만들었다거나, 기존에 존재하던 장치, 물질, 프로세스 등을 개선한 경우 특허를 받을 수 있다. 에디슨의 전구,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테슬라의 교류유도전동기 등이 그 예다.
디자인권은 제품의 외형(디자인)을 보호한다. 특허가 제품의 기능을 보호한다면, 디자인권은 제품의 외관(심미성)을 보호한다. 의류를 예를 들면 비에 젖지 않는 기능성 소재는 특허로 보호하고, 특정 의상의 외형이나 심미적인 부분은 디자인권으로 보호하게 된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디자인 특허라는 표현은 미국의 ‘design patent’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디자인권에 해당한다.
상표권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식별하는 명칭, 기호, 슬로건, 디자인, 색상 또는 로고를 출원해 등록받은 경우다. 코카콜라, 애플, 삼성, 스타벅스, 구찌, 페라리 등 우리 주변의 유명한 브랜드는 모두 상표로서 보호되고 있다. 상표는 ‘애플’처럼 회사를 나타낼 수도 있고, ‘아이폰’처럼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나타낼 수도 있고, ‘페이스타임’처럼 제품 또는 서비스의 기능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처럼 그 회사가 갖고 있는 서브 브랜드일 수도 있다. 상표권에는 10년의 보호가 부여되며, 지재권 중 유일하게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다.
저작권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모든 창작물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에는 소설, 회화, 영화나 노래 등의 예술작품뿐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 웹사이트 디자인, 건축도면 및 제품설명서와 같은 비즈니스 산출물도 포함된다. 저작권 보호는 저작물이 창작된 시점에서부터 시작되며, 저작자의 사후 70년까지 유지된다. 저작권은 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할 수 있는데 특허권, 상표권, 디자인권과 달리 등록이 필수사항은 아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하나의 제품에 여러 개의 지재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재권을 잘 활용하는 기업은 하나의 제품을 다양한 지재권으로 보호한다.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경우 복수의 상표권(H형상 로고상표, 그랜저라는 문자상표, 현대라는 문자상표), 복수의 특허권(엔진 기술, HUD, 조향 기술 등), 복수의 디자인권(차의 외형, 휠 디자인, 부품별 디자인 등)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수년간 진행된 ‘애플 vs 삼성’ 지재권 소송, 거액 배상금 오가며 종결돼
특허권 분쟁 사례로는 애플과 삼성의 특허소송이 유명하다. 애플의 아이폰을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베꼈다고 2011년에 제기된 이 소송은 무수한 화제를 뿌리다가 2018년에 합의로 종결됐다. 애플은 삼성을 상대로 바운스백(스마트폰으로 자료를 볼 때 마지막 자료에선 끝임을 알리기 위해 화면이 용수철처럼 튀는 듯한 시각 효과를 주는 기술), 핑거 투 줌(엄지와 검지로 화면의 특정 부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기술), 두 번 터치 시 문서확대 기술 등의 침해를, 삼성은 애플을 상대로 각종 통신 기술에 대한 특허침해를 주장했었고 거액의 배상금이 오고갔다.
디자인 분쟁과 관련해서도 애플은 이 소송에서 자사 스마트폰의 디자인 특허를 삼성 스마트폰이 침해했다고 주장해 많은 배상액을 받았다. 스마트폰 모양을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것, 스마트폰 앞면 아래쪽에 홈버튼 하나를 배치하고 옆면에 볼륨키 등 기능키를 배치한 것 등이 애플의 외관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이 인정된 것이다. 이후 삼성은 미국에서의 디자인 특허출원을 2배 이상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상표 분쟁에서는 직방과 다방의 사례가 유명하다. 다방 측(스테이션3)이 ‘다방’이라는 상표를 어플리케이션(이하 앱) 분야에 대해 등록하지 않자, 직방 측에서 ‘다방’이라는 이름을 해당 분야에 등록한 후 그 이름을 앱 등에 사용하지 말 것을 침해금지 가처분 등 소송에서 주장했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가서야 다방의 승리로 종결됐다. 만약 다방이 이 소송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다방은 앱과 관련한 모든 이름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또한 사리원면옥과 사리원불고기의 소송도 유명하다. 상표권 보유자인 사리원면옥이 사리원불고기에 대해 사리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소송에서 ‘사리원’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인지가 쟁점이었는데, 결국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인정돼 사리원면옥의 상표는 무효가 되고 분쟁이 종결됐다.
저작권 분쟁으로는 대한항공의 사례가 있다. 영국 작가 마이클 케나가 ‘풍경사진 솔섬’의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자연 풍경물을 대상으로 하는 저작물은 같거나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 창작의 범위가 제한돼 있다”며 솔섬 사진을 처음 발표한 마이클 케나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저작권은 특별히 등록을 요구하지 않는 권리로서 권리의 발생이 쉬우나 보호는 생각보다 어렵다.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경우에도 보호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특허, 디자인, 상표권보다 약한 권리로 평가된다.
이처럼 지재권 분쟁의 결과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바뀌고 있어 기업들은 지재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과거의 선조들은 성으로 벽을 쌓아 스스로를 보호했으나, 지금은 지재권으로 무형의 가치들을 보호하는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