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도서관 방문은 늘 카드목록함에서 종이를 하나씩 넘겨가며 원하는 책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학생이 됐을 무렵엔 온라인으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카드목록함은 도서관 한쪽 벽면에 유물처럼 방치된 신세가 됐고 언제부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인덱스카드를 넘기던 손가락은 키보드로 옮겨갔다. 그 다음은 뭘까. 이에 대한 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에 있는 실감서재다.
지난 3월 23일 개관한 실감서재는 도서관 콘텐츠에 실감기술을 적용해 미래의 도서관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등을 전시에 활용한 사례가 있지만 도서관으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한다. 체험관에 들어서자 대형 화면과 여러 개의 인조대리석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검색의 미래’ 코너로, 테이블 위에 터치로 검색어를 입력하면 연도별·주제별로 분류된 연관 키워드가 거미줄처럼 펼쳐진다. 검색 결과와 책 표지를 대형 화면에 띄워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 가능하다.
실감서재에서는 고지도와 고서적을 인터렉티브 지도와 디지털북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울의 모습이 담긴 서울시 유형문화재 ‘수선전도’가 고해상도 지도로 구현돼 있는데, 마치 스마트폰으로 지도앱을 다루듯 손으로 확대·축소할 수 있고 광화문, 명동 등 특정 지점을 터치하면 현재 지명과 함께 설명이 나온다. 지도 속에서 실시간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디지털북 콘텐츠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과 『무예도보통지』가 제공되고 있다. 원본은 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보관돼 있어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책들이다. 고서적의 질감을 재현한 대형 책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이용해 책의 내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시대 무예교본인 『무예도보통지』의 페이지를 넘기면 인물들이 칼을 휘두르고 말 위에서 창을 던지고 있다. 『동의보감』을 펼쳤더니 토끼가 튀어나오면서 간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한문으로 된 원문은 손을 대니 샤라락 사라지면서 한글 해석본으로 대체된다.
실감서재 한편에는 VR도서관을 체험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헤드셋을 쓰고 독서 공간으로 국립중앙도서관, 바닷속, 집옥재(경복궁에 있는 왕의 서재) 중 하나를 선택한다. 단편 문학작품 35편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을 읽다가 지루하면 가상공간 안에서 간단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VR도서관은 헤드셋만 있으면 집에서도 가상공간에 들어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직은 실제 독서에 비해 현실감이 떨어지고 불편했지만, 기술적으로 보완되면 조만간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똑같이 독서를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었다.
검색 결과를 손짓으로 테이블에서 스크린으로 옮기고, 종이 위에서 삽화가 살아 움직인다.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물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첨단기술을 입은 도서관은 책을 오감으로 즐기는 곳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실감서재는 상설 체험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www.nl.go.kr)에서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