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다수 청소년은 대학 입시 노이로제로 성장기에 걸맞은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나중으로 미룬다. 그렇지만 그 ‘나중’은 돌아오지 않는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 때는 그림책, 초등학교 때는 동화책이나 학습만화, 지식·정보책 등을 접하다가 청소년기에 접해야 할 청소년 소설이나 한국과 세계의 명작 읽기를 건너뛰고 나면 대학 때는 취업 준비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직장 일로 바쁘다는 이유로 독서를 멀리한다. 그래서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인생도 책 읽기도 ‘나중에’는 없다. 책을 읽지 않기 시작하면 ‘간헐적 독자’로 변하고, 어느새 ‘비독자’가 되고 만다.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민간단체들과 합심해 추진한 ‘청소년 책의 해’였다. 여러 차례 이뤄진 ‘책(독서)의 해’ 행사에서 처음으로 청소년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우리 국민의 생애 독서 그래프를 보면, 초등학생 때 비교적 높은 수준이던 독서 관심도는 중고등학생 때 급격하게 하락해서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한국인의 ‘습관적 독서’ 인구 비율이 OECD 최하위권인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단절을 어떻게 뛰어넘을까가 화두다.
‘청소년 책의 해’는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나 대규모 책 축제와 오프라인 행사는 어려웠지만, 온라인 등을 활용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먼저 ‘2020 청문상(청소년문학상)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직접 심사위원이 돼 문학상 수상작을 결정했다. 청소년 장편소설 가운데 전문가들이 추려낸 15종의 목록에서 참여 그룹별로 4종씩을 청소년들이 선택해 읽고 그룹별 수상작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약 3천 명의 청소년은 함께 읽기와 능동적인 독서 체험을 하며 ‘정신의 키’를 한 뼘씩 키웠다. 새로운 형태의 청소년 책 읽기가 뿌리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국내 최초의 청소년 맞춤형 책 추천 사이트인 ‘북틴넷’(bookteen.net)은 지속적인 활동으로 불과 1년 만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청소년이 원하는 주제의 책을 짧고 재미난 글로 소개해 읽고 싶도록 추천(큐레이션)해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 책의 해’ 연구사업으로 추진한 「책 읽는 청소년 독자 형성 실증연구 및 사례조사」에서는 독서 습관이 몸에 밴 흔치 않은 청소년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책 읽는 청소년을 만드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에 대한 관심을 결정짓는 ‘골든타임’이 초등학교 1~2학년과 중학생 시기라는 것도 밝혀졌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부터 솔선수범하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진저리치는 독후감 쓰기를 강제하는 대신 즐거운 독서체험을 만들어줘야 한다.
책은 지식과 상상력의 보고다. 창의력이 생존 도구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독서는 여가 선용만이 아닌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창직(創職)이 필요한 시대다. 풍요로운 생각의 원천인 책을 청소년기에 실컷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즐겁고 유익하면 습관이 되고, 싫은 경험이 쌓이면 멀리하게 된다. 청소년 독서환경에서 우리 사회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우리 아이들이 평생의 자산인 책 읽는 습관을 갖도록 가정, 학교, 사회가 독서 친화적인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