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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는 화폐, 코인은 자산 성격 강해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 2021년 09월호


“9월 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 CBDC가 생기면 암호화폐는 필요 없어질 것이다.” 지난 7월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이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나와 한 말이다. 파월 의장 발언에 암호화폐(코인)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3일 만에 대장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각각 10% 가까이 추락했을 정도다.
파월 의장 말대로 CBDC가 상용화되고 나면 정말 모든 암호화폐가 자취를 감추게 될까. CBDC와 코인은 공존할 수 있을까. 미래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다만 CBDC와 코인의 차이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존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CBDC와 민간 코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 본다.

CBDC와 암호화폐 모두 블록체인 기술 덕에 계좌·카드 불필요
기존 종이화폐와 동전을 없애고 모든 화폐를 디지털화한다는 것이 각국 CBDC 연구가 지향하는 바인데, 사실 이런 디지털화폐는 아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인터넷뱅킹이나 자동이체, 또 삼성페이나 카카오페이 같은 간편결제 역시 디지털화폐의 한 종류다. 송금이든 월급이든, 지폐로 돈을 주고받는 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된 요즘이다.
CBDC가 간편결제나 온라인뱅킹 같은 기존 디지털화폐와 다른 점은 ‘금융사’의 역할이 최소화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삼성페이나 카카오페이를 쓰더라도 기존 신용카드나 돈을 꺼내 쓸 은행계좌를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CBDC 세계에선 상업은행이나 카드사 같은 중간 금융기관이 할 일이 사라진다. 계좌나 카드가 필요 없어진다는 얘기다.
각국 CBDC 실험 내용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 먼저 개인은 주민등록번호에 연동되는 지갑을 갖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유한 현금을 모두 디지털화폐로 환전해 지갑에 전송한다. 디지털화폐는 스마트폰 같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결제·송금할 수 있게 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CBDC에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는 덕분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하게끔 세팅된 블록체인 기술이 상호 금융거래를 기록하고 증명한다. 은행이라는 공신력 있는 중개기관의 ‘검증’ 절차가 생략돼도 괜찮은 이유다. 요컨대 CBDC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P2P(개인 간 거래) 디지털화폐’라고 보면 되겠다.

언뜻 CBDC와 코인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①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②금융기관을 거칠 필요가 없고 ③디지털로 송금·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첫째, ‘탈중앙’ 여부다. CBDC는 중앙은행이나 정부 관리감독이 가능한 반면, 코인은 철저히 중앙 통제를 벗어난다. CBDC는 기존 화폐와 마찬가지로 정부나 중앙은행 뜻대로 발행량을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 오히려 기존 화폐시스템보다 정부 권력이 더 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디지털 방식인 덕분에 화폐를 찍어낼 때 들어가는 비용이 없어 발행·유통이 자유로운 데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CBDC 거래 기록과 위치를 추적·관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앞으로 모든 송금·결제는 우리은행 계좌와 카드로만 가능하다’고 선포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은행은 A씨가 언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지 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CBDC도 비슷하다. 단지 우리은행이 아닌 중앙은행이 기록을 관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반면 코인은 중앙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철저히 수요·공급에 따라 가치가 책정되고 발행량과 유동성 역시 전 세계 채굴 수급으로 결정된다. 거래 추적 관리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CBDC와 다른 점이다.
둘째, 개인의 보유 목적이다.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린다. 암호‘화폐’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화폐보다는 ‘자산’으로서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액면가에 고정된 CBDC와 달리 인플레이션 헤지나 재테크 수요가 많다.
차이는 ‘희소성’에 있다. 무한대 발행 가능한 CBDC와 달리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공급량이 한정돼 있다. “과거 달러가 나왔다고 금이 사라지지 않았듯 CBDC가 나온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코인 긍정론자들의 주장이다.

탈중앙·희소성·활용도 등에서 차이
셋째, 기존 산업과 시너지 여부다. 코인의 기능은 결제·지급에 한정되지 않는다. 코인은 현재 금융·물류·콘텐츠·헬스케어·사물인터넷 등 여러 산업과 서비스에 활용되는 중이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동으로 거래나 기록이 이행되는 코인 특유의 ‘스마트계약’ 기능 덕이다.
예를 들어 물류 암호화폐 비체인(VET)은 제품 출하, 이동, 판매 등 물류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돼지고기를 주문했다고 하면 돼지가 언제 태어났고 어떤 농장에서 사육됐는지, 또 어디에서 도축됐고 어떤 물류 회사를 통해 이동하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비트토렌트(BTT)는 음악, 영화, 문서 등 다양한 데이터 파일을 인터넷에서 P2P 방식으로 전송하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토렌트를 오래 켜놓을수록 코인으로 보상을 주고, 또 희소성 높은 자료를 공유할 경우 더 많은 코인으로 보상을 받는 구조를 설계했다. 이들은 이미 실제 산업에 활용되고 있는 코인들이다. 단순히 ‘기존 화폐의 디지털화’를 꿈꾸는 CBDC로는 당장 불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향후 CBDC가 스마트계약 기능을 갖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수년 넘게 특정 분야 기술을 축적해 온 민간 코인들에 비해 기술 경쟁력이 떨어질뿐더러, 민간이 중앙화된 CBDC를 굳이 비즈니스에 활용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CBDC와 코인이 공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디지털화폐를 띄우기 위해 각국 정부에서 암호화폐 죽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게 그 근거다. 중앙은행이 가진 발권력은 정부 권력의 원천이다. 암호화폐시장이 이를 위협하는 것을 정부가 그냥 두고 볼 리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전 세계에서 CBDC 실험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의 최근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중국은 자국 내 암호화폐 채굴장을 전면 폐쇄했고 암호화폐 거래도 사실상 금지했다. 디지털 위안화 상용화를 위한 포석을 미리미리 깔고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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